330. 융통성

by 청리성 김작가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독과 같은 것으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것』


‘융통성’

한동안 내가 제일 싫어했던 단어다. 지금도 때로는 싫어하는 단어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아!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 정도, 그러니까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고 또 열심히 했던 시기다. ‘열심히’라는 기준이 지금과는 달랐던, 의욕이 넘쳐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시절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였을까? 타협이라고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야 했다.

군대 영향도 있었다.

의지가 약했던 나를 담금질하자는 의미로, 좌우명을 이렇게 적었었다. “나 자신과 타협하지 말자!” 보이는 곳에는 전부 이렇게 적어놨다. 한 선임은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됐던지, “니, 뭐 그리 타협을 많이 했다고 그러노?”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그때는 결심한 것을 끝까지 해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적금을 들어도 만기까지 기다린 적이 없었다. 굳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지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런 정신상태(?)를 군대에서 뜯어고치자고, 내가 나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렸던 거다.

그래서였을까?

정해진 규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끔찍이도 경계했다. 그러면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어찌 보면 순박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친구들은 이런 나를 융통성이 없는 꽉 막힌 친구로 바라봤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갑갑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런데도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얘기를 하면서 놀리곤 하는데, 그래도 결론은 흐뭇하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믿어!”

갑갑하리만큼 융통성이 없지만, 그래서 절대 거짓으로 대할 것 같지 않다고 친구들은 말한다. 그때마다 가끔 마음이 뜨끔하긴 하지만 말이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거짓이 없고 포장이 없겠는가!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일이다. 나를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나를 감추게 되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믿음을 주는 사람은, 나에게 거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옆길로 잠시 샜지만, 어쨌든.


융통성은 백지수표가 아니다.

언제 어느 때나 날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가끔 도구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같은 도구라도 누가 들고 있느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진다. 융통성도 마찬가지다. 정말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융통성으로 포장만 했지 실상은 자기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바꾼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든 바뀌게 된다.

이런 상황이 허용되면 언제 어느 때나 자기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 약속을 바꾸게 된다. 그러면 함께 하는 사람은 기준을 세울 수 없게 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데 뭐….’라는 생각으로 불신의 골은 깊어진다. 그래서 융통성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 융통성은 최악이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융통성 이야기를 꺼내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타인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융통성을 남발하는 사람은 결국, 융통성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럴 수 있는 것과 그래도 되는 것은 다르다. 융통성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사용되는 것이지, 언제든 그래도 되는 것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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