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 중심

by 청리성 김작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이 있어야 할 위치』

‘소문’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되는, 가장 첫 번째 루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알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찾아 물어본다. 바로 아는 사람을 통해 듣기도 하지만, 몇 다리를 건너 소개를 받아 물어보기도 한다. 직접 만나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서 배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지피지기 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기 때문이다. 싸우려고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상대를 알면 도움이 된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들을 때도 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 대해 듣게 되는 데, 말해주는 사람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도를 밝히면 그 사람이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여럿이 모일 때 초대하기도 한다. 업무적으로나 다른 부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역으로 만나달라고 요청을 받을 때도 있는데,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서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맞지 않는 관계라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리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려는 이유를, 이렇게 비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하거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 습관적으로 리뷰를 살핀다. 먼저 구매했거나 사용한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을 하기 위해서다. 리뷰가 좋으면 자연스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리뷰가 좋지 않으면 안 좋은 부분만 눈에 보이게 된다. 리뷰가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식당을 고를 때도 그렇지 않나? 사람이 너무 없으면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것 말이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남이 이루어지면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만나진 않았다는, 일종에 예의 표시라고 해도 되겠다. 나 역시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던 적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듣던 대로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들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뭐지?’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고, 그 영향으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다. 상대에 대해 먼저 들은 내용이 오히려 방해된 거다. 왜 그럴까? 참조만 해야 하는데,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질에서 멀어진다. 달리기를 예로 들면 이렇다. 달리는 게 목적이라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하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 달리는 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내가 달리고 있는 방향이 집으로 향하고 있는지 살피지 않으면, 다리가 풀리도록 열심히 달렸지만, 오히려 집과 멀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은 열심히 달렸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중심에 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직접 들어보고 직접 하는 것을 봐야 한다. 그런 후에 생각을 정리하고 판단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생각 중심에 서는 방법이다. 알고는 있지만 잘 하지 않는, 그것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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