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부활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앞세워야 하는 마음』
“부활했니?”
지난 ‘부활 성야 미사’에서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아니다. 다른 신부님의 일화를 소개해 주셨는데, 그 신부님이 후배들에게 했던 말씀이라고 하셨다. 신학생 때 시험 문제에, 부활의 의미를 적으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에 체험을 바탕으로. 한참을 고민했다고 하시면서, 이후부터 후배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고 한다. 중요하지만 잘 생각하지 않게 되는 부활의 의미를, 후배들이 항상 기억했으면 하는 의도로 생각된다.
부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부활(復活)은 말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부활을 우리 일상에 대입하면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단어의 의미 그대로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버리고 싶은 습관이나 생각을 죽이고, 새로 생겼으면 하는 습관이나 생각을 살리는 것으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작든 크든, 매일 이렇게 죽이고 살리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뜬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은 5시였는데 시계는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늦게 일어난 자신의 의지와 상황으로 한숨을 내쉬고, 오늘은 좀 더 일찍 자야겠다고 다짐한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다, 거래처에 메일을 보낸다. 아차! 파일을 첨부한다는 걸 깜빡한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좌절감이 더하다. 전에도 이러고 다음에는 주의해야지 했지만, 실수는 반복됐다. 정신을 차리자고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시간에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영부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잘 시간이 돼서야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는 걸 깨닫는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꼭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다짐했다고 바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좋은 습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나 강연이 사라졌겠지? 정말 쉽지 않다. 가슴을 두드리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면서 다짐하지만, 시간과는 반비례로, 그 의지는 점점 내려간다. 아니 잊혀간다. 일상의 습관도 이런데,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실천하는 것은 어떨까? 웬만한 다짐과 노력으로는 쉽지 않다. 좌절을 학습하면서 가능성은 희박해져 가고, 그렇게 그 길은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해야 할까? 늦잠을 잤다고, 에라 모르겠다고 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쓰듯, 그렇게 그냥 덮어버려야 할까? 그러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겠지?
다짐을 현실로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의지? 노력? 실천력?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은 아니다. 첫 번째 조건은 바로, 믿음이다. 내 다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고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나를 그곳으로 이끌고 간다. 내가 목표한 곳과 내가 멀어지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도 노력을 덜 해서도 실천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된다는 믿음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과연 누가 나를 믿고 도와줄까? 내가 목표하는 것이라고 해서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면 무엇하겠는가?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고 얻을 수 없다. 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말과 행동에는 에너지가 담긴다. 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말과 행동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에너지가 담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많은 일을 생각해 보라. 이뤄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를 말이다. 부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