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득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말과 행동』
‘설득의 심리학’
오래전에 읽었던 책 제목이다. 세부적인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구성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설득,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해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의 기준이 바로, 상대방의 심리 상태라는 말이다. 설득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내 말에 동의해야 가능해진다. 따라서 상대방이 동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상황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 적합한 한 마디는,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참 어렵다.
그래서 앞서 말한 책이 출간되고 많은 사람이 그 책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서적을 검색하진 않았지만, 그 종류도 참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어쩌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설득으로 시작해서 설득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감을 얻기 위해 영업하는 것도 설득이 돼야 가능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큰 손해 없이 잘 마무리하려면 설득이 필요하다. 그만큼 설득하는 기술(?)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설득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주변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평소에 친분을 잘 쌓아왔다면 정말 어려운 일을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만나기 어려운 분을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쉽게 만나는 것이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박 씨를 물고 오는 제비처럼 말이다.
설득은 일반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한다.
아쉬운 사람, 그러니까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아쉽거나 원하는 것이 있어서 자식을 설득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그렇다. 자식이 하든 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권유하는 거다. 받아들이는 처지에서는 간섭으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무 말이 안 통하면, 속상한 마음에 이렇게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싫음, 말아라! 자기 손해지 내 손해인가?”
어느 정도 사랑해야 그렇게 될까?
득이 될 것도 손해가 될 것도 없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전해주기 위해 설득하는 마음과 노력 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라야 그렇게 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 할 일을 신경 쓰고 챙기기도 벅찬데, 누구를 챙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쉽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 선제적 조치(?)로 챙기면 모를까 평소에 신경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다. 도대체 이분들의 마음은 뭐로 채워져 있는 걸까?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때도 포기하지 말아야겠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설득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나에게 득이 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설득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