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행동
완성도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
매년, 날씨가 추워질 때쯤, 가정에서 ‘김장’을 한다.
김장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연중행사처럼 치르게 된다.
혼자 하기 버거워서, 가족이나 동네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김장의 마무리는, 돼지고기를 삶아서 겉절이에 싸 먹는 것이다
김장하고 바로 먹는 김치는 신선한 맛이 있고, 시간을 두고 익히면 깊은 맛이 있다.
묵은지라고 해서. 일부러 오랜 시간 숙성시켜,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김장 이외에도, 만들어놓고,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는 음식들이 있다.
어린 시절, 따뜻한 아랫목에 메주를 이불로 덮어놓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해, 그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어머니한테 나오라고 한 소리를 듣기고 했다.
어린 마음에, 내가 메주보다 못하냐고 투덜댄 기억도 난다.
집 마당이나 옥상에 항아리가 몇 개씩 있었는데, 거기에는 간장과 고추장이 있었다.
그 장들도 필요한 시간을 보내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어느 집에 가든, 큰 유리통에 술이 담겨 있었다.
술 안에는 다양한 과일이 들어있거나, 뱀이 들어있기도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어떤 집에는 병 겉면에 날짜가 적혀있기도 했다.
친구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 술을 개봉하는 날이라고 설명해줬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날을 기다리시며, 자꾸 술병을 들었다 놨다 하셨다고 한다.
김치와 메주, 장 그리고 담근 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다는 것과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맛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
급한 마음에 기다리지 못하고 먹게 되면, 기대했던 맛을 볼 수 없다.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을 숙성해서 필요한 때에, 말과 행동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빨리빨리’가 일반화되어있는 우리 사회는, 침묵의 시간을 기다리기 어려워한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러지 않아도 될 때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침묵을 통한 숙성의 시간을 가지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는 뺄 수 없는 못을 박기도 한다.
그런 후에 느끼는 감정은 ‘후회’뿐이다.
침묵은 그냥 가만히 참고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때그때 반박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지는 시간이 아니다.
완성도를 높이는 시간이고, 이기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이겨낼 때, 세상에 어떤 것과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개구리가 점프하기 전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낮게 움츠린다.
침묵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