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 추억

by 청리성 김작가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 충분조건으로, 서로가 노력해야 쌓을 수 있는 것』

“가가, 가가?”

경상도 사투리 중에 가장 유명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사용한 적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 표현의 의미는 이렇다. “그 아이가, 네가 말한 그 아이가 맞니?” 의미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조건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뭔 소리냐며 황당해할 뿐이다. 그러면 어떤 조건이 성립돼야 할까? 이 말을 하는 사람과 그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은, 이미 전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의 그 아이와 답하는 사람의 그 아이가 일치하게 된다.

사투리 이야기를 하니, 사투리의 추억이 떠오른다.

내 기억으로 사투리를 가장 처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력하게 처음 접했던 곳은 대학이었다. 대학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다양한 사투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친구가 신기해 보였다. 연예인을 쳐다보듯, 그렇게 바라봤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사람에 따라 말투가 완전히 달라질 때였다.


평소에는 표준어를 잘 사용하는 부산 친구가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서울에서 오랫동안 지낸 친구 같았다. 그런데 친구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엄마한테 전화하는 말투를 듣게 되었다. ‘잉?’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서 통화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표준어를 사용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 말과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


서로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표준어를 사용하듯, 각 지역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모습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각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그 지역에 표준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너무도 당연한 답이겠지만, 오랜 시간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들어왔고 입으로 뱉어왔던 말이기 때문에,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시간에 스며든 추억이 있으면 어떨까?

공감할 수 있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가가, 가가”처럼, 사투리지만 그 지역 사람 모두가 이해하진 못한다. 서로의 추억이나 짧게라도 공유한 무언가가 있어야, 이해가 가능해진다. 사람이 서로 공감하고 대화를 이어가려면, 시간과 추억 이 두 가지가 모두 버무려져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며칠 전에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준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묻는다.

“둘이 누구인지 알고 하는 얘기야?” 둘이서 어떤 사람에 관해 대화하는 건 알겠는데, 누구라고 명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을 듣고 한 질문이다.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만 하는데, 서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으니, 영문을 모르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질문할 수밖에. 이 둘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대화의 흐름에서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수시로 그 사람을 언급한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상대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응대를 할 수 있었다.

서로가 하려는 말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시간과 추억이다. 시간은 이해에 필요한, 기본적으로 쌓여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바로 궁합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물다. 시간이 필요조건이라면, 추억은 충분조건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서로 공감하면서 나눈 노력인 추억이 없다면,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시간과 추억이 충분하게 쌓였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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