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공경

by 청리성 김작가

같은 사람으로서 본받을 만한 성품으로 이뤄낸 삶을, 본받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


“나를 추앙하라!”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불쑥 던진 말이다.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잉? 이게 웃긴 말인가?’ 가끔 영화를 보긴 하지만, TV를 보지 않는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집에 TV가 없기도 하지만, 그 안에 하는 것들에 관심이 없다.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주행이라고 하지 아마?, 일주일에 한두 편 보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 감칠맛 난다고 해야 할까? 드라마가 종영되고 사람들의 추천 이유를 듣고 나서, 이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몰아치기로 보는 게 좋다. 아무튼.

사람들이 웃었던 이유를 묻진 않았지만, 알게 되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이긴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장면과 출연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다. 추앙(推仰)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라는 뜻이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 단어의 뜻을 모르진 않았다. 다만 매우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분위기에서 사용되는 단어라는 느낌이 있어서, 좀 낯설었다. 사람들은 ‘추앙’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한 것에 빵 터진 것이었지만 말이다.

드라마에서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봤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한다. 남자는 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여자는 응원하는 거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여자는, 제대로 응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마음을 다해 사랑받아보지 못해 가뭄에 갈라지는 땅처럼 그렇게 갈라진 자신의 마음에, 단비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 표현을 ‘추앙’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고. 잘못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비껴간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추앙을 응원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추앙은 좀 딱딱하다.

추앙보다, 자발적이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표현은 없을까?

있다. 바로, 공경(恭敬)이다. 공경은 ‘공손히 받들어 모심’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라는 의미로, 부드럽고 자발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를 공경하라!”라고 했으면, 그 맛(?)이 좀 떨어지긴 했을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추앙보다는 공경이라는 표현이 더 공손하고 존경의 의미를 담지 않나 생각된다. 선망에 대상으로 여기는 위인을 공경하지, 추앙하진 않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에서 언급하기 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표현이긴 하다.


공경은 동일한 대상 즉, 사람에게 바친다.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성품을 지녔거나 본받을 만한 행적을 남긴 분들에게 바친다. 성인(聖人)들에게 바치는 것이 공경이다.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5월22일)에, 성모님께 바치는 공경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성모님을 하느님과 동일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는 흠숭(欽崇)을 바치고, 성모님께는 공경을 바친다. 이에 대해 잘 설명된 내용이 있어 인용해 본다.


『가톨릭교회는 오직 하느님께만 흠숭을 바치고(흠숭지례), 모든 성인 성녀들에겐 공경을 바치고(공경지례), 성모님께는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보다 높은 차원의 공경을 바치도록(상경지례) 가르칩니다. 성모님은 매우 특별한 분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출처: 2022년 5월22일(일) 서울주보 4면, ‘가톨릭교회는 왜 마리아를 공경할까요?’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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