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을 잊지 않고, 착각하지 않아야 할 힘
맹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유불위야이후(人有不爲也而後), 가이유위(可以有爲)’ 사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의(仁義)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은 후에라야, 인의(仁義)를 실행에 옮기는 힘이 발휘된다는 의미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절제를 발휘해야, 해야 할 것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분들의 말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자기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스스럼없이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과연 통하겠는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명대사밖에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나 잘하세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권력이라고 하니,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다른 표현으로 바꿔보겠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개인에 힘은 개인의 역량에 따른 비중이 클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개인의 역량은 최소한의 조건에 해당하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는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개인의 능력이 갑자기 뻥튀기처럼 부풀어 오르는 건 아닌데, 순식간에 누군가 공동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공동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공동체 안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힘이 아니겠는가? 이 공동체가 국가가 되면, 그 안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힘은 곧 권력이 되는 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위험한 착각이 있다.
공동체에서 실어주는 힘을 자기 힘이라 생각하는 거다. 내가 자주 든 예로 표현하면, 토끼와 호랑이다.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는 토끼가 숲속을 지나가는데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우와 늑대 같은 동물들이 인사를 한다. 토끼는 어색한 표정과 동작으로 대응하지만 만나는 동물들이 다 인사를 하니, 어느새 인사받는 게 익숙해진다. 토끼의 어깨는 하늘을 향하게 되고 인사하는 동물들을 거만한 눈빛과 표정으로 바라본다. 동물들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토끼를 바라보지만, 토끼는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숲속을 다 돌고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호랑이가 기지개를 크게 켜더니 순식간에 토끼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토끼의 착각이 불러온 실수는 무엇인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절제를 발휘하지 못한 거다. 토끼 이야기에서는 인사 정도로만 표현했지만, 자기가 곧 권력이라고 착각하면 교만에 빠지게 된다. 자기 마음대로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자기가 판단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판단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판단이 최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으니, 아니 못하니, 점점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점점 더 착각의 늪에 깊이 빠지게 된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드는가?
조심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절제하고 계속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수가 있다. 나에게 생긴 힘은 내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잊게 되면 토끼와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말이다. 옛 선인들이 이미 알려주셨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몸소 보여주고 계시니 잘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