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고민하기보다, 그 상황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내부 혹은 외부에서 발표할 때가 그렇다. 중요한 현안에 대해 공지할 때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발표는 매우 떨린다. 내가 하는 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큰 변화가 없는 결과면 모를까,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어서 읽어보기도 하고 중요한 단어나 문장은 외우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을 혼자서 연습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앉혀놓고 실전처럼 해보기도 한다. 사실 외부 발표의 경우는 내부에서 실전처럼 할 때가 더 떨린다. 다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듯하다.
개인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이면 자주 경험한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부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공동체에 리더라면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나도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많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학교 발표 말고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했던 때가 기억난다. 고등 1학년 말, 성당 주일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였다. 중고등학생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거 연설을 해야 했다. 아! 선생님들과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성당 어른들도 계셨으니 더 많은 연령대와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어떻게 말해야 내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됐다.
처음 하는 연설이라 떨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고민 끝에 작성한 원고라 그런지 핵심 표현은 기억난다. 나무 다발로 표현했다. 인생은, 경험이라는 나뭇가지가 하나둘 모여 하나의 다발을 엮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그 경험의 나무 다발 중 하나가 학생회장이라 생각한다고 하면서, 내 인생에 나무 다발을 채울 수 있도록 뽑아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신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연설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귀에 잘 들어왔고 집중됐다는 말을 들었다. 큰 표 차이로 학생회장에 당선이 됐고, 정말 인생에 중요한 다발 중 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나무 다발 이야기는, 고전 이야기 중 하나를 인용한 거다.
서로 다투기만 하는 세 아들을 두고 임종을 앞둔 한 아버지의 지혜를 다룬 이야기다. 다툼이 잦은 아들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기가 불안했던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나뭇가지를 가져오게 했다. 하나씩 들고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라고 했다. 세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 다음에는, 쉽게 부러트린 나뭇가지를 다발로 엮어서 건넸다. 나뭇가지를 쉽게 부러뜨린 아들들은 이 또한 어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양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부러트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말했다.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그 나뭇가지가 모이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혼자의 힘은 약하지만, 합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 서로 싸우지 말고 합심해서 세상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언제부턴 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상황을 상상한다.
어느 날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다. 그 생각에 몰두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거나 묵상 중에 그 상황이 떠오른다. 내가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다.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듣는다. 그리고 그 내용을 메모한다. 메모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 혹은 에피소드를 추가로 적는다. 그러면 내가 이야기할 내용이 정리된다. 매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를 말이다.
작년에,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내 나이에 주례? 하지만 의뢰한 후배는 매우 진지했다. 그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주례는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배는 본인의 결혼식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축사를 하기로 했다. 주례사 같은 축사로 말이다. 누군가의 중요한 인생 길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게 매우 조심스럽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중요한 길목에 나를 초대해 준 게 고마웠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이번에도 역시 그 상황이 상상됐다. 어른들이 계시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청년들도 있으니, 그들 눈높이에 맞는 유머를 섞어서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발견했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상상을 해보자. 그럼, 나도 모르는 내 자아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려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