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려 하지 않을 때, 돈독해지고 단단해지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認定)에 너무 연연하거나 질책이나 비판에 지나치게 풀이 죽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보시는 한결같은 사랑의 눈길이다.” <마르코 복음_기쁨의 문을 열다> 중에서
<마르코 복음_기쁨의 문을 열다>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타인의 판단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는 사건이 나온다. 착복식을 마친 자신의 모습을 본, 두 손님 수녀님의 반응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모습은 같은데 상반된 의견을 주는 말을 듣고, 타인의 평가에 동요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성향이나 생각 그리고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쌍둥이도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타인은 오죽하겠는가?
사람의 의견은 다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의견이 다른 게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내가 문제다. 그냥 한 사람의 의견으로 듣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자기 마음에 내려 앉힌다. 그리고 자기 방식대로 그 말을 요리한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분명 이런 의도가 숨어 있을 거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는다. 아! 편안하게 의견을 물어보는 사이라면 그렇게까지 해석하고 불편해하진 않겠다. 물어보지 못하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그 관계는 같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사이일 거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가?
상대방이 한 말과 행동이 무엇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가 진정 그 사람에게 있는지 나에게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그 이유가 있다면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 써도 소용없다. 마음을 쓰면 쓸수록 자기 마음만 더 무거워질 뿐이다. 쉽진 않겠지만, 빨리 털어내야 한다.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이유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그 이유가 있다.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지, 오히려 좋은 행동을 한 거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을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바라볼까? 아니다. 주변에도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의 친절은 참 좋아 보이지만, 누군가의 친절은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가식적으로 보인다거나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 판단한다. 왜 그럴까?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비비 꽈서 바라본다.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순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마음을 바꾼다는 게 참 어렵다.
바라보는 마음을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이기려 하지 않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최근에 다투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왜 그 사람과 다퉜는가? 왜 불편한 관계가 되었는가? 세세한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론은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아이를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겨야 하는데 아이가 지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딪히고 언성이 높아지는 거다.
타인도 마찬가지다.
자!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내가 이기면 어떤 이득이 생기는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거다. 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지, 왜 다투는지조차 잊는 경우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사람 관계에서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순간은 우쭐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기고도 지게 된다. 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때문이다. 이기려는 사람과는 함께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