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하지 않거나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없는 힘
군대의 추억(?) 하나 소환할까 한다.
그러고 보니 제대한 지 벌써 22년이 흘렀다. 2,000년을 맞이하던 해, 3월 초에 제대했으니 말이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제대하고 바로 복학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 10월은,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만 8년이 되던 달이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라 느껴지진 않는다. 그만큼 거침없이 달려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입사할 때 초등 2학년이던 첫째가 고등 2학년이니,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닌 듯하다. 군대 추억 소환하려다 회사 추억을 소환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날이니 기억하고 넘어가고 싶어 서론이 길었다.
군대에서는 거의 모든 사건(?)이 추억이다.
20년이 넘었지만,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한 장면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이야기다. 휴일로 기억된다.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병사 뒤편에 있었다. 왜 거기에 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서 있던 건 분명 기억난다. 한참 말을 하던 선임 앞에 사마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선임은, 좌우에 산 모양으로 쏟아 오른 사마귀의 두 다리를 집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주면서, 한마디 했다. “먹어!”
부대마다 특성이 있다.
이런 것도 전통이고 해야 하나? 암튼, 부대만의 독특한 뭔가가 있다. 우리 부대는 생물을 먹이는 특성이 있었다. 그러니 그리 생뚱맞은 말은 아니었다. 다만 사마귀라는 것이 좀 생뚱맞았을 뿐이다. 사마귀에 물리면 작은 혹처럼 뭔가 난다. 범상치 않은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사마귀를 먹으라니. 그렇다고 안 먹는다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는 군대고, 지금 말한 건 선임이니까 말이다.
심한 내적 갈등을 빚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마귀를 먹고 탈이 나나 안 먹고 탈(?)이 나나, 매한가지 아니야?’ 그랬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한테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어있다. ‘에이, 그럴 거면 그냥 먹고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입을 벌려 사마귀와 내 입이 마주하는 순간. 선임의 손이 날아와 내 손에 든 사마귀를 쳐냈다. 그러곤 한마디를 던졌다. “난, 내가 먹지 않은 건 안 먹인다.” 순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철저한 철학인가! 자신이 먹지 않은 건 검증되지 않았으니 절대 먹이지 않는다는 철학 말이다.
“내가 하지 않은 건 시키지 않는다.”
내가 일할 때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한 신념이다. 아니, 신념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직책이 올라갈수록 직접 하지 않았지만 지시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서를 이동하고, 그럴 일이 더 많아졌다. 다만 지시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많은 고민을 하는 게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신념을 가진 이유가, 앞서 말한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준듯하다. 이유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은, 피드백을 줄 수가 없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후임이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명확한 피드백을 줄 수가 없다. 내 경험상 그랬다. 그래서 새로운 일이 들어오면 내가 먼저 했었다. 먼저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줬다.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는, 벌어지기 전에 차단하도록 했다. 그게 경력자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무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명심하고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피드백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힘듦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다. 직접 해본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어떤 지점에서 어려움이 있는지 안다. 따라서 힘들고 어려워하는 후배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또는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알 수 있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 말이다. 물에 빠져본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과 그에 따른 공포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더 깊이 공감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행동한다.
물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왜? 왜?”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조치를 할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을 경험할 순 없다. 하지만 하나의 경험을 통해 다른 경험을 유추할 수는 있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직접 경험할 수 없다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지시하고 조언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공감에 시작이고, 함께 하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