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 기대

by 청리성 김작가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는 믿음으로, 위기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내 맘 같지 않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 혹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라 생각된다. 나는 최근에도 이 말을, 무의식중에 내뱉었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서로의 처지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순 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인정은 하지만, 그 생각이 너무 자신의 처지에서만 생각하고 말하면 서운한 건 사실이다. 내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생각해 줬으면 하는 희망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처지가 바뀌면,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할 테니 말이다. 서로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는 이유도 그렇지 않은가? 서로가 생각하는 지점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으면 서로에게 좋으니 말이다.

상반된 의견일 땐, 특히 그렇다.

서로가 원하는 지점의 방향이 반대라면, 더 많은 대화와 논의를 통해, 최소한의 접점을 찾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러 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이런 마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결정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로 비유하는 표현이다. 칼자루를 잡은 사람은 마음대로 칼을 휘두를 수 있다. 자신이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칼날을 잡은 사람은 어떨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만 해야 할까? 칼날을 잡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자신이 다치기 때문이다. 협상할 때 칼자루를 잡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칼자루를 잡으면 좋겠지만, 칼날을 잡을 때가 더 많다.

그러고 보니 칼자루를 잡았다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구직자는 차고 넘치는데, 기업에서는 사람 뽑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보인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앞뒤가 안 맞는다. 칼날을 잡은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건 뭘까? 칼자루를 잡은 사람이 가만히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걸까?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순 없다. 언제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과 같아, 불안하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

무딘 칼날이라면 어떨까?

칼날이 무디다면, 상처를 전혀 안 입진 않겠지만, 크게 상처 입을 가능성은 적다. 타격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칼자루를 잡기는 어렵고 칼날을 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게 더 현명할 수 있다. 이를 조직과 개인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렇게 풀어볼 수 있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직원의 이탈이라는 칼날을 쥐고 있는 조직과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개인의 칼날로 보면 이렇다.

조직이 칼날을 무디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시스템과 문화다. 조직에서 사람이 이탈할 때 염려되는 부분은, 공백이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대한 공백 때문인데, 이 공백은 개인의 역량에 편중될 때 더 크게 발생한다. 개인의 역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만큼의 역량으로 채우지 않으면 공백을 메우기가 어렵다. 따라서 시스템화해야 한다.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프로세스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말이다. 아! 그렇다고 개인의 역량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분명 사람이 하는 일은 개인의 역량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역할과 역량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거다. 하지만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결정적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는, 회사의 핵심 메시지와 연결된다.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보통은 비전이라고 표현한다. 그 목표와 방향에 따라 문화는 자연스레 형성된다. 만약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과 어울리지 않는 문화라면, 구성원이 목표와 방향을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잦은 소통과 이벤트 등을 통해 계속해서 목표와 방향을 알려줘야 한다. 때로는 구성원과 협의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 볼 수 있다.

개인이 칼날을 무디게 하는 방법은 하나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는 거다. 조직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오히려 없어야 할 사람이다. 조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은, 조직에서 볼 때 칼날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꼭 업무 역량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역량이 된다면 그 외에도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조직에 따라 다르니, 이 부분은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조직과 개인은 별개가 아니다.

조직에 속해있다면, 조직의 처지가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처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실 고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다만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그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전혀 알 수 있다. 공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아무렇지 않거나 오히려 더 좋아지는 일도 있다. 이 조직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한다. ‘새옹지마’라는 고사 성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닥친 상황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말고, 기대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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