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생각의 방향
감사와 원망은 한 끗 차이다.
51:49라는 말이다. 50:50에서 1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감사가 되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 이 마음에 따라 이후에 하는 말과 행동도 달라진다. 그렇게 누군가는 선순환을 이루고 누군가는 악순환을 이룬다. 안타까운 건 선순환보다 악순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관점을 전환할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면서 악순환에 빠지려고 그런 게 아니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몰라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생각은 관성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과 마주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바로 생각하게 되는 방향이 있다. 사람을 예로 들면 이렇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마주치는 순간 어떤 방향으로 생각이 향하는가? 좋은 점을 찾으려는 방향으로 생각이 향한다. “옷이 잘 어울리네!”, “좋은 일 있나 봐?” 등등의 표현으로 마음의 방향을 표현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마주치는 순간부터 마음이 꼬이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의 방향이 그리로 향하는 거다. ‘왜 실실거려?’, ‘저게 뭐야?’ 등등의 마음속 생각이 그 방향을 설명한다. 이는, 의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다. 그러니 관성이라는 이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몸도 마음도 관성대로 움직이는 게 편하기는 하다. 하던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관성에 따라 움직인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의식했다는 사실은, 가던 방향에서 멈췄다는 말이 된다. 잠시 멈춰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삶과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거다. 하지만 어디로 방향을 돌려야 할지 난감하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질문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질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간단한 질문 하나로, 관점을 바꾸는 상황을 가끔 경험한다. 관점의 변화는 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방향을 찾도록 도와준다.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그냥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까? 아니다. 스스로 질문을 하면 된다. 스스로 하는 질문을 통해서도 충분히 관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무언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자. 그럴 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이걸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게 될까?’, ‘지금 내가 이걸 한다면,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지 못하게 될까?’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조금은 뚜렷해질 수 있다. 비교를 통해 중요성의 무게 측정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은 나를 살리고 타인도 살린다.
좋은 질문 하나는, 산소 호흡기와 같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별거 아닌 질문이 혹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 타인에게는 산소 호흡기 같은 존재감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 이런 질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질문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질문이 있으면 메모해두기도 한다. 필요한 시점에 나도 모르게 뚝 하고 튀어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매일 좋은 질문 하나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