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필요한 것을 이야기할 때 좋아질 수 있는 연결고리
“주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시리라!” (창세 22,8 참조)
06:00에 CPBC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특강이 진행된다. 평화방송 TV에서 진행한 특강 중, 반응이 좋은 내용을 라디오에서 다시 들려주는 것이라 소개한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못 듣다가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다. 그때 들은 내용은,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의 <위대한 성인들>이다. 예전에 다른 루트로, 성인(聖人)들을 소개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이야기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말씀이 서두에 언급한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늦게 얻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산에 오른다. 이때 이사악이 묻는다.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이사악에게 말한다.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인용한 표현이다.
신부님께서도 이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하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이 문장을 주문을 외우듯 나지막이 읊으셨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이 말씀을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알려주셨다. 아이한테가 아니고 부모한테 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달라고 바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욕심이 추가된다. 공부도 잘했으면, 운동도 잘했으면, 머리도 좋았으면 등등 뭐든 잘하길 바란다. 커서는 돈도 많이 벌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 이 말씀을 떠올리면 좋겠다. “주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시리라!”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다그치게 되는 거다. 잘 따라도 성에 차지 않는데, 따르지 않으면 마음이 매우 불편해진다. 그렇게 다시 강요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잦은 다툼은 곧 불신으로 연결되고 더는 소통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대화의 필요성을 배제하게 된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다. 다툼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내 말에 복종하도록 해야 하는데 따르지 않으니 마음이 불편하고, 그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다툼이 시작된다. 부모나 아이 모두 마찬가지다. 서로가 대화하기보다, 이기려고만 생각하니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부모와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왜 이기려 할까?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알아서 하는 꼴을 잘 보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 전달되면, 아이도 부모에게 믿음을 주기 어렵다.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나의 청소년 시절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안 좋은 길로 빠질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부모님의 믿음이 나를 잡아주었다. 만약 그때 부모님이, 이래라저래라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나도 궁금하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한다. 많은 것이 그렇지만, 믿음은 더욱 그렇다. 내가 먼저 믿음을 가지고 다가서야, 그 믿음에 대한 응답을 얻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건 참 어렵다.
내가 원하는 상황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더욱 그렇다. 부모와 아이가 충돌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거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이 정답이 될 순 없다. 독을 약으로 알고 달려들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독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말한다면,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자! 이렇게 질문해 보자!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