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도움의 마음과 여유, 한 바가지
자존감(自尊感)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기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감정으로 표현하면, 뿌듯함이나 떳떳함이라 할 수도 있겠다. 타인을 존중할 때 느끼는 감정을 자신에게서도 고스란히 느끼는 거다.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분의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떳떳함을 읽을 수 있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도 자연스레 펴지게 된다. 하물며, 자기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 들 정도니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는가? 뿌듯한 마음은 곧,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 떳떳함으로 드러나지 않겠는가? 묵직한 중심이 잘 자리 잡은 느낌이 든다. 자존심보다 자존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해 본다.
“언제 자존감이 올라올까?”
아!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발견한다. 자존감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의식하지 않고 던진 질문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언제 올라가는지를 물었기 때문이다. 올라온다는 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자존감을 품고 있다. 자존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 깊이 내려앉아서 보이지 않는 거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올라오기를 바라는 자존감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마중물의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땅속 깊이에 있는 우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 어릴 때 외가에 가면, 마당에 초록색 수동 펌프가 땅에 박혀있었다. 호기심에 펌프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했지만, 쇠 마찰음 소리만 났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 신기한 걸 보여준다며, 이모가 옆에 있는 물 한 바가지를 넣고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차가운 물이 펌프 입구의 굵기만큼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원리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그 기억이 강력해서인지, 마중물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렇다면, 자존감의 마중물은 뭘까?
무엇 한 바가지를 내 마음에 넣으면, 깊이 내려앉아 있는 자존감이 쏟아 오를까? 도움이다.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 한 바가지가, 바로 마중물이 된다.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다. 실질적이든 심적이든 그것도 상관이 없다. 내가 도움을 주기 위해 건넨 마음과 도움이 됐다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면 그걸로 족하다. 상대방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도움을 줬다는 마음 하나면 된다. 그렇게 내가 건넨 도움의 마음이 마중물이 되어, 자존감이라는 우물을 끌어올린다. 끌어올린 물을 다양하게 사용하듯, 끌어올린 자존감은 다른 활동에 영향을 준다. 물론 좋은 영향이다.
자존감 한 바가지를 남겨둔다.
끌어올린 물 중 한 바가지를 남겨놓듯, 그렇게 남겨둔다. 마음에 여유다. 자존감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자존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다. 뭔가에 쫓기듯 하다. 겉으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튼, 마음에 여유가 없다. 타인을 돕는 마음과 그 안에 여유가 함께 공존할 때, 최고의 마중물이 되어 자존감을 끌어올린다. 우리는 마중물만 생각하면 된다. 그 안에 우물이 어떻게 올라올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뜻대로 이루어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