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성 김작가 Apr 04. 2024

원하는 것을 얻는 데 필요한 외부의도

타인을 중심으로 둘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의도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신뢰를 보내는 거다. 내가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신뢰를 보낸다. 무쇠 자물쇠로 채워진 것처럼 단단하게 닫힌 마음도, 신뢰가 계속되면 스르르 풀리게 된다. 한때 유행병처럼 번졌던 사이비 종교의 포교 술이 알려진 적이 있다. 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다.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거였다. 집에 찾아가 상황을 살피고, 없는 것을 채워줬다고 한다. 심지어 냉장고까지 채워줬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질만이 아니었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마음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고 한다. 당한(?) 사람들은 다 알면서도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다고 하니, 신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신뢰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고 그냥 믿는다. 하지만 신뢰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가?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부정하지 않는가? 정 설득하고 싶으면 설득해 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런 마음을 품은 사람을 설득하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믿지 않으면 요구한다.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면 더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해되지 않은 상황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치거나, 자신에게 해로운 상황이라면 절대 물러설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더 다양한 요구를 하게 된다.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여러 증거를 제시하면서 다양하게 설득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해야 하니, 내가 얻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 3>에서 언급된 내용 덕분이다.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듣고 본 내용이다. 하지만 그때만 고개를 끄덕였지, 실제 활용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급했다고 해야 할까? 지금이라고 마음이 느긋해진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빠른 결과를 위해 마음이 먼저 내달렸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그와 관련된 말과 행동을 쏟아낼 수밖에. 짧은 문장이지만, 너무도 명확한 문장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이들로부터 얻어낼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다른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려 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소망과 동기에 주의를 돌리다 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얻어진다.”     


책,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그들에게 신경 쓰는지 확인할 때까지는,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두 책에서 소개한 문장으로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나에게 쏠린 시선을 타인에게 돌리라고 말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서 떨어져 나와, 상대방이 원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신경을 쓰라는 의미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는다는 거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먼저 주라는 말과도 같다. 이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실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계속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명만 하지 말고, 내가 이해돼서 실행하도록 설득해 보라고 말이다. 해보지도 않고, 다그치기만 했다. 직접 실행해야 경험이 생기고, 믿을 수 있게 되는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받고 싶을 때,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을 활용할 수 있다. 그 법칙은, ‘받으려는’ 당신의 내부의도를 물리치고, 그것을 ‘주려는’ 의도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받으려는 것을 주려는 것으로, 의도를 바꾸라고 한다.

받으려는 생각이 들 때 의도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라는 의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하는 말을 잘 경청하는 게 필요하다. 경청하면 공감하게 되고 궁금한 부분이 생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일 가능성이 크다. 받으려는 의도를 주려는 의도로 바꾼 명확한 증거다. 자기 이야기를 한참하고 난 상대방은 어떤 마음이 들까? 자연스레 나에게 신뢰를 보내게 된다. 이 프로세스는 코칭 대화 프로세스와 같다. 코칭 대화가 얼마나 강력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당신의 상품을 어떻게 팔지를 고민하지 말라. 고객이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지를 생각하라. 팔려고 애쓰는 것은 내부의도다. 외부의도는 완전히 다른 방향,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쪽에 맞춰져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