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야 만들어 지는 길
마음의 방향이 만드는 통로
등산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산을 많이 탔다.
고등학생 때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혼자 산에 오르곤 했다. 주로 도봉산을 올랐다.
아침 일찍 출발해 정상에 올라갔다가 집에 도착하면, 저녁이 되었다. 산을 탈 때는 바닥만 보면서 올라갔다. 경치를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닥만 보고 질주하듯 올라가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펼쳐놨다.
산을 탈 때는, 거의 쉬지 않고 올라간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가쁨과 싸워가며, 펼쳐진 머릿속 생각의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정상에 도착하면, 타이머를 맞춘 듯이, 머릿속 생각의 퍼즐이 완성된다. 숨을 고르면서, 정리된 생각도 고르고 내려간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을 오래 갖진 않았다.
산을 타다 보면, 가끔 헷갈리는 길이 나온다.
갈라지는 길인데, 한쪽은 한눈에도 등산로로 보인다. 다른 한 길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등산로보다 더 완만해 보일 때는, 그 길로 들어선다. 좀 가다 보면, 중간에 길이 끊기거나 올라갈 수 없는 절벽과 마주하게 된다. 허무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처음부터 길을 만든 것인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길이 된 것인지 궁금했다.
완만해 보였던 길은, 만든 길은 아니고, 사람들이 다니면서 만들어진 길로 보였다. 호기심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없던 길을, 한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잔가지를 치고 풀을 밟으며 길을 냈을 것이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길로 가게 된다. 나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계속 다니다 보니, 길이 된 것도 있을 것이다. 갈라지는 길인데, 조금 지나면, 다시 한 길로 만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길이 되고, 그 길로 사람들은 많이 다니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는, 천사의 집과 악마의 집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 두 집에 갈 수가 있다. 처음부터 길이 나 있던 것은 아니다. 가다 보니, 등산로처럼,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번은 천사의 집에 가고, 한 번은 악마의 집에 간다. 몇 번 가면서 조금씩 길이 만들어진다. 조금 더 많이 간 집에 길이, 다니기 편하게 만들어진다.
길이 잘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마음이 먼저 그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들어오는 현상은 같다.
어느 집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뿐이다. 화를 낼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상대를 원망할 수도 있고,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다. 천사의 집에 갈지 악마의 집에 갈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더 자주 가도록 노력하고 간 길이, 더 잘 만들어지게 되어있다.
내가 어떤 집에 주로 가는지에 따라, 좋은 상태를 불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는다. 나쁜 상태를, 좋은 방향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픈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관리에 대한 신호로 느끼는 것이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나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깨어 살펴야 한다.
매일 깨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조용히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루에 잠시라도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라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일 수도 있다. 내 마음의 방향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