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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Nov 07. 2024

몸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침묵’은 ‘무기’고, ‘기도’는 ‘평화’다.”

올해 98세라고 밝히신, 김정희 에프렘 수녀님의 말씀입니다. ‘침묵’이 ‘무기’라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드러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불만스러운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말이지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다고 합니다. 싸우게 되는 상황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마음에 있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싸움의 방아쇠에 불을 댕기게 되는 거죠. 수녀님이 드신 예는 이렇습니다. 술 마시고 들어온 남편한테 따뜻한 차 한잔 내주면 될 것을, 굳이 또 술 마시고 들어왔냐며 타박하지 않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니 싸움이 나는 거라고 말이죠. 그러니 침묵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평화롭다고요.     


구산 성당에서 성령 세미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알려주었는데요. 퇴근하고 이동하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듯하여,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요즘 신부님이나 수녀님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그 시간이 참 좋아, 될 수 있는 대로 참석하려고 합니다. 이번 강의도 그랬습니다. 수녀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함께하자는 말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참석했습니다. 예상보다 집에 늦게 도착해서 서둘러 차로 이동했는데요. 집에서 구산성지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기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주차장에는 이미 차가 빼곡했습니다.

칸이 쳐져 있는 공간은 보이지 않아, 차를 세워도 될 것 같은 공간에 세웠습니다. 어차피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일 테니, 문제가 되진 않을 듯했습니다. 다행인 건 주차장 바로 옆 1층이 세미나 장소였다는 겁니다. 그 장소는, ‘옛 성전’이라고 안내되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니, 초등학교 교실 2~3개 정도 붙여놓은 듯한 넓이였고, 전체 길이만큼의 천장 높이로 된 성전이었습니다. 천장은 옛 성전답게, 나무로 잘 짜여 있었는데요. 가운데가 뾰쪽하게 올라간 지붕 모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란 나무 의자는 이미 다 차 있었고, 뒤편에 간이 의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간이 의자 몇 개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요. 저희도 간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강의 시작할 때쯤에는, 통로에 놓인 앞쪽 간이 의자로 이동했습니다.    

  

수녀님은 쪽지에 적힌 메모를 보며, 말씀하셨는데요.

일반적으로 듣는 강의 형식과는 달랐습니다. 할머니가 짧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듯, 당신이 겪으신 일들을 하나씩 꺼내주셨습니다.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기적 이야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눈을 똑바로 뜨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말하면, 하느님께 혼난다고요. 쪽지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셨다며, 좋은 말씀이 적혀 있는 쪽지를 읽어주셨는데요. 녹음하지 못한 것이, 떠나가는 버스를 보는 것 같은 마음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건진 말씀이, 처음 언급한 말씀입니다. “‘침묵’은 ‘무기’고, ‘기도’는 ‘평화’다.” 몇 번을 강조하셨기도 하고, 말씀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로 메모했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안수까지 해주셨는데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도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느낌과 말씀을 담고 갈 수 있었으니까요.     


수녀님의 모습은,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연세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은 했지만, ‘98’이라는 숫자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통로 가운데에 앉아 있어서인지, 시선이 계속 저와 마주친 느낌이었는데요. 수녀님 눈빛이 맑았습니다. 그리고 또렷했습니다. 말투와 목소리는 귀를 기울여야 했지만, 눈빛만은 달랐습니다. 안수하실 때는 꼿꼿하게 서서 해주셨습니다. 100여 명 되는 사람들 모두를 말이죠. 이 모습을 돌이켜보니, 수녀님이 해주신 일화가 떠오릅니다.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아들이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괴로워하던 아버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그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영혼이 살아야, 몸도 살지.” 이 아버지는 무슨 말씀인지 깨닫고, 실천했다고 합니다. 모든 식구가 고해성사하고 냉담을 푼 겁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영혼이 살아야 몸이 산다는 말씀이 머릿속에 계속 맴돕니다. 수녀님이 정정해 보이신 이유도, 영혼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지 짐작해 봅니다. 맑고 또렷한 눈빛과 꼿꼿한 모습이, 영혼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수녀님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지,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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