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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 상태

by 청리성 김작가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날이 따뜻해서 겨울 같지 않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는데요. 하늘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는지, 보란 듯이 눈을 쏟아부었네요. 어제 출근길은 참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쌓인 눈으로 도로 정비가 원활하지 않아, 오랜 시간 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던 버스는 회차했는지, 버스 정보 앱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앱에서는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가 먼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와 바로 넘어갔는데요. 이마저도 오지 않았습니다. 원래 기다리던 곳에 버스가 먼저 도착한 것을 보고, 다시 넘어가 간신히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원활한 도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는데요. 버스는 악을 쓰며 젖 먹던 힘을 다하는 느낌으로, 조금씩 전진해서 그 경사를 넘었습니다. 평소보다 늦게 동네를 빠져나왔지만, 그나마 길이 심하게 막히진 않아,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오후에도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오늘 출근할 때도 눈 내리는 모습을 봤는데요. 내리는 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 생각이 곧 나이를 말해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감상에 젖거나 마음이 들뜬다면, 젊은 거라고 합니다. 아직 낭만이 있다는 거죠. 길이 막히는 걸 걱정한다거나 차가 더럽혀지는 것 그리고 질퍽거리는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올라오면, 나이가 든 거라고 하네요. 공감하거나 말거나 말이죠. 생활인이 낭만보다는 지금의 활동을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내리는 눈을 볼 때는,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니까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있는 자기 처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거죠.


학창 시절 이야기로 가볼까요?

숙제 검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걱정에 휩싸일까요?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가요? 아니죠? 숙제해 간 날은 가슴을 펴고 선생님과 마주합니다. 숙제했으니 당당한 거죠. 숙제하지 않은 날은 어떤가요? 제발 숙제 검사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죠. 전체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날이 며칠이냐에 따라 번호를 지목하기도 하는데요. 이때도 희비가 갈립니다. 숙제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갈리는 거죠. 한 사람은 걸리길 바라고 하지 않은 사람은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먹은 날과 안 먹을 날의 차이를 느껴보라는, 약 광고가 떠오르네요.


일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 느낌을 절감했던 때가 있었는데요. 프로젝트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랐죠. 많은 사람에게 “나 이렇게 잘 준비했습니다.”하고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나 자신도, 자신감과 함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항상 그랬을까요? 아니죠.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준비할 때는, 소홀하게 되는 프로젝트가 생깁니다. 이유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말이죠. 이때는 어떨까요? 날짜가 다가오는 게 싫었습니다. 숙제하지 않은 날이 다가오는 느낌인 거죠. 스스로 느끼기에도 위축됐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이 두 경험을 통해, 프로와 아마추어를 정의한 말이 있습니다.

“프로는 기대하고 아마추어는 걱정한다.” 프로는 프로젝트를 잘 준비해서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맞이하지만, 아마추어는 잘 준비하지 않아 그날이 오는 것을 걱정하는 거죠. 프로와 아마추어는 실력보다는 준비하는 마음 자세에서 갈린다고 정의한 겁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마음 자세가 먼저라는 겁니다. 마음의 자세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낼 가능성이 커집니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과 상황도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슬퍼합니다.

준비됐거나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기뻐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슬퍼하는 거죠. 눈도 그렇고 숙제도 그렇고 프로젝트도 그렇습니다. 이런 건 뭐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끝자락은 어떨까요?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준비가 잘 된 자신이었으면 하나요? 아니면 어찌 돼도 상관없나요? 지금 상태를 점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해보면 됩니다. “오늘, 이 세상을 떠나도 마음이 편안한가요? 아니면, 불편한가요?” 전자라면 잘 준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후자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삶은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이 생각을 품고 천천히 잘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어제, 구산 성당에서 신부님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왜 하시나요?” 답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때도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본성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이 나누고 전할 수 있으면, 그것이 잘 준비하는 삶이 아닐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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