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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비둘기 Sep 05. 2017

지하철 망상

맞은편에 여자 둘이 서 있었다.

내 옆에 자리가 나자, 둘 중 언니라 불리는 이가 내 옆에 앉았다

다른 곳에 자리가 난다면 이 일행이 함께 앉도록 자리를 비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는 동안

그 둘은 "그런 것 같아요, " "정말 그런 일이 많아, " 따위의 말들만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서로에게 전혀 닿지 않았고

맞은편에 자리가 났다

언니라 불리는 이는 핸드폰을 꺼내어 보며 저기 앉으라 했고,

동생으로 생각되는 이는 그리로 잽싸게 가 앉았다

그들은 함께 지하철에 올랐지만

거리가 필요해 보였기에

나는 자리를 바꾸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언니라 불리는 이의 다른 쪽 옆에 앉은 남자가

동생으로 생각되는 이에게 일행이니 자리를 바꾸어주겠다며 일어섰고

아주 잠깐 각자 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이들은 의도치 않게, 

원하던 거리를 잃었다.


관계에 관한 그 어떤 사회적 윤리의식에 의해

다시 한 두 마디를 하던 그들은

이내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는지

함께 내릴 때까지 각자의 핸드폰만 보았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나는

핸드폰을 넣고 책을 꺼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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