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재즈 즉흥에 있어서 에고는 자짓 제거 대상처럼 보여질 수 있다.
중재하려는 의식적 의사결정 구조가, 음악과 대지(자연 등)의 기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왜곡시킬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자의식이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위험이다.
그렇다고 이드에 따라서만 추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재즈의 미학은 자유로운 역사적 숨결을 몸에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즈는 에고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에고마저도 받아들이고(통합) 미학적 전환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에고가 주가 된 자기표현이 아닌, 에고 자체가 움직임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생각한(정립한) Ecological Jazz Movements는,
위 개념들을 모두 수용한 움직임의 발생이다(내가 움직임을 만든 게 아닌).
이런 관점에서 choreography의 주체는 인간만이 아닌 비인간 존재(자연 등)와의 co-emergence가 된다.
결국 Authentic Jazz의 미학은
에고를 포함한 인간의 상처와 저항을
비인간적 세계와의 공동 즉흥 속에 놓음으로써,
지배가 아닌 공명으로 존재하는 방식이
몸을 통해 드러나는 생태적 재즈 미학이다.
“자유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와 함께 즉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