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 여덟
죽음의 공포는 삶의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최선의 삶을 산 자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 마크 트웨인 -
‘길어야 1년’이란 의사의 말이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몸을 부서 내듯 내려쳤다. 처음엔 그 충격이 충격 인지도 모를 만큼 멍해졌다가 현실이 꿈처럼 몽롱해졌다. 그러다가 다시 나와는 상관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멀어졌다. 그런 다음에야 다시 내가 죽을 것이란 현실이 머리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딱히 누구에랄 것 없이 마구 화가 나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앞뒤 분간할 수 있는 분별력이 돌아왔다.
의사에게 물어봐야 할 중요한 질문이 뒤늦게 생각난 것이다.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돌아올까 무섭고 망설여졌지만 마지막 질문을 할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이대로 (죽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그 질문을 어렵게 입에서 떼곤 덜덜 떨면서 그 대답을 기다렸다. 생에 대한 절실한 갈망을 놓지 않기 위해 매달리는 내게 의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재로선 유일한 회생 가능성은 수술뿐입니다.”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하는 회생의 마지막 끈이었다. 새까만 암흑 속에서 저 멀리 가느다란 빛줄기가 어렴풋이 보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꺼져가는 내 생명이 되살아 날 수 있다는 한 가닥의 작은 희망, 그런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축복, 예전엔 거의 우러나지 않았던 절대자에 대한 감사가 하나의 실체가 되어 선명한 감정으로 표출되었다. 그걸 가슴 뿌듯하게 경험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뿐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다.
그때까지 견뎌야 했다.
살아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기다리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죽는 것이다.
아직 떠날 준비가 안되었다는 생각뿐이다. 죽고 싶지 않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난 기다릴 수 있다고 마구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건 얼마나 오래 걸리는 수술이건 성공률이 50% 아니 단 1%라고 해도 꼭 받아야 하겠다. 그저 살아야겠다.
죽음의 존재를 처음 피부로 느꼈던 때가 선연히 기억난다.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해였다. 입학 기념으로 극장에서 영화 ‘삼총사’를 보았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신나는 활극 때문에 영화 내내 깔깔대고 손뼉 치고 좋아했는데 달타냥의 연인 콘스탄스를 죽인 밀라디의 피 묻은 손이 문고리를 잡는 후반부터 코미디 활극 영화가 내겐 순식간에 공포영화로 둔갑해버렸다. 그 한 장면은 진저리 치는 악몽이 되어 1시간 넘게 스크린위에 펼쳐진 온갖 재미들, 영화의 배경인 중세 프랑스의 화려한 궁전과 귀족들의 호화로운 의상, 총사들의 통쾌한 모험과 활극, 달타냥이 보여준 코믹 하면서 생기발랄한 액션, 콘스탄스의 청순한 미모 등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 채 오직 클로즈업된 피 묻은 여자의 손만이 머릿속에 깊숙이 새겨졌다.
며칠 밤 계속된 악몽의 시작을 연 그날 밤, 자정 무렵 선뜻 잠에서 깨었다.
식구들 모두 잠이 든 돈암동 한옥집은 온통 어둠에 덮여 있고, 비바람이 창문을 불연속적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가로등에 흔들리는 집 앞 나무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창문가에 스물 거리는 걸 보자, 목 뒤로 쭈르르 소름이 돋았다. 마치 죽음이란 실체가 그날 밤 생이 다한 어떤 영혼을 이끌고 저편 어디 죽음의 본거지로 떠나다가 슬쩍 자신의 그림자 한 조각을 드리우듯, 악몽에서 깨어난 어린 나를 공포로 묶어 놓았다.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리면서 난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죽으면 유리창문 너머의 어둠과 같은 암흑 속에 묻히게 된다’는 것을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신화나 전설 따위가 아닌 손에 잡힐 듯한 현실로 전해져 왔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과연 죽은 그다음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울렸다.
‘죽음 이후를 아무도 모르는데…’
‘저 창밖의 새까만 어둠과 같은 죽음에 무기력하게 손을 붙잡힌 채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낮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죽음이 아예 찾아오지 않는 듯 태연하게 일상을 계속하는지…’
커다란 물음표가 던져졌다.
혹시 태연을 가장한 체 두꺼운 가면을 쓰고 공포에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을 가면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잊은 것이 아니라면 감춘 것이 아니라면 매일 아무렇지 않게 버스 타고 학교엘 가고, 새로운 영어 단어가 나오면 공책에 10번씩 쓰는 숙제를 하고, 방과 후엔 지치도록 태권도와 컴퓨터 학원을 다녀야 하고, 중간고사 영어 점수가 96점인 게 뭐 그리 대수인지 이상하기만 했다.
다 잊은 것인가, 애써 잊은 척하는 것인가, 무서워서 벌벌 떨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에겐 무슨 확실한 대비책이나 방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희망찬 결론을 내렸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어렴풋이 잠에 빠져든 일요일 새벽, 기어이 어둠을 쫓아낸 푸르스름한 동녘 빛이 미닫이 방문의 한지를 적시듯 드리울 즈음, 난 그게 확실하다고 믿었다. 모두에게 무슨 확실한 대비책이 있을 거라고.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 대비책만 알아내면 뭐 그리 걱정할 게 없는 것이다. 그 대비책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 어리고 어른이 된 훗날, 죽음에 내 손을 덜썩 잡히더라도 크게 겁낼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