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입사 직후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지사장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3일간의 워크숍 후 12명의 동료들과 뒤풀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홍콩, 인도, 대만, 그리고 나까지 총 9개국 출신들이 모였다. 영어 구사력이 모두 나 보다 훨씬 뛰어났다. 일상적인 영어를 하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업무에 관련된 전문 비즈니스 영어들이 난무함에 당혹감을 느끼던 차였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출신이야 영어가 모국어나 다름없다. 반면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팀장들이 워크숍에서 구사하는 영어를 보면서 다소 주눅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은 카투사를 거쳐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뉴질랜드에서 거주한 지도 꽤 지난 뒤였음에도 기껏 평균을 넘나드는 수준이었다.
한편으로 영어를 공부한 기간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의 무지막지한 영어 교육을 어느 국가도 따라가지 못할 텐데 도대체 목표가 비뚤어진 비효율적인 공부에 온통 시간을 소모했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의 팀장들이 저녁 식사에서 나누는 능란한 영어 구사력이 부럽기만 했다. 여기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영어란 단어는 알지만 뜻을 전혀 모르겠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다.
Don't go back on your words. The situation runs deep so dont' hold your breath.
If you stop slacking off, I'll give you the benefit of doubt.
You'd better do it your way. Don't take a leaf out of my book.
I'm all ears but I won't be able to go out on a limb for you this time.
Stop beating around the bush. We need to explore how to leverage it.
이때 평생 안 까먹을 영어 표현 몇 개를 배웠다. 창이 공항에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현지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가져야 할 최우선적인 무기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국이 아닌 영어 문화권에서 생존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써야 하는 것은 필수 요건이었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내 영어는 당시 지사장들의 영어 구사력 수준에 도달했는가.
글쎄다. 분명 늘긴 했겠지만.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 잡았던 종합 영어 책을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하루 15분씩 유튜브의 원어민 영어 강좌들을 들으며 쓰고 말하고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공부해왔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매일 해야 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30대 초의 네가 지금 영어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하루에 단 15분만 투자해라. 단어 하나, 숙어 하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 예를 들면 친구에게 영화 보러 가자는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화의 흐름을, 최대 10 문장 정도로 묶어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단어와 숙어, 무엇보다 발음을 집중해서 공부한다. Potato와 Photography의 발음 차이가 한 예다. 이것을 하루에 한 묶음으로 15분씩 집중해서 공부하고 주 단위로 복습한다. 즉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공부하고, 금요일은 한 주간 배운 것을 복습하는 식이다. 주 단위로 하면서 매월 마지막 주엔 한 달 동안 익힌 문장 묶음을 총 복습한다. 1년에 대략 150개, 10년이면 최소 1,500개의 묶음을 배우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리드하면서 다양한 어휘력과 발음을 구사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을 마스터해야 성장할 수 있다. 20년 넘게 외국에 살았어도 간단한 Subway 샌드위치 주문 하나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 불편함을 하나씩 무너뜨리면서 20년 후엔 고급 비즈니스 영어를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Marketing Director가 된 너를 상상해보라.
매일의 꾸준함이 비결이다.
오늘 시작하는 첫 번째 15분의 공부가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