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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Aug 23. 2022

잃어버린 나를 찾게 하는 신의 선물

서른세 살의 네게 해주는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조언이다. 


항상 죽음을 껴안고 살아라!


어제와 다른,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지금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기 위해. 

항시 네가 죽는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여라. 

떠날 것이란 사실을 온몸으로 기억한다면 나중에 무엇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맨 몸으로 와서 맨 몸으로 돌아가는데 무엇을 잃겠는가.

그렇게 용기를 얻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믿는 용기,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 있는 용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 의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치열하게 매진할 수 있는 용기로 무장한다. 결국 죽을 것이란 생각을 새삼 깨우치고 기억하면 매사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거리낌 없이 결정할 수 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을 읽다 보면 다음 세 가지는 과연 확실하다.


확실하게 아는 것, 세 가지.  

1. 우리 모두 죽는다. 너와 나를 포함해 모두 다. 

2. 혼자 죽는다. 가장 외로운 순간이다.

3. 순서 없이 죽는다. 나이, 성별, 국적, 피부색,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과 아무런 상관없이. 


확실히 모르는 것, 세 가지.  

1. 언제 죽을지.

2. 어떻게 죽을지.

3. 어디서 죽을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막상 떠날 때가 되면 지나 버린 모든 삶의 순간들이 아쉽고 아름답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친숙한 환경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낯선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그때서야 뒤를 돌아다보면 너무 늦은 것이다.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우리는 마치 그 마지막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매일을 살긴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내 사무실 책상 옆에 붙여놓은 글귀다. 힘들 때마다 이 글을 보며 가슴 한쪽이 시려지는 아련함과 더불어, 망설임과 주저함을 서슴없이 떨쳐 내었다. <사진 = 강바


매일의 그 반복적이고 단순하다고 느껴왔던 일상의 뻔한 순간들, 즉 아침에 일어나서 지하철 속에서 부대끼며 출근하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차 마시고 식사하는 당연한 일상,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 업무와 인간관계에 짜증 나는 에피소드들을 털어내는 따위의 소소한 행위들, 하루를 마쳤다는 나른함에 풀어지는 저녁 퇴근길,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 등 그 순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며 축복받은 일상의 기적임을 매 순간 깨닫고 즐겨야 한다. 


지금부터 죽음을 품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라.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치열하게 매 순간을 살 수 있다. 새로운 도전과 실패, 기대감, 특히 다른 사람들이 가질지도 모르는, 혼자 막연하게 생각하는 바보 같은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지 깨닫게 해 준다. 후회도 적게 남는다.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을 없앨 수 있다. '기회가 보이면 그냥 해 봐야지 뭐!'라고 담담하게 덤벼들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 손해보고 양보하고 기꺼이 밑지고 져주는 그 순간들이 다른 이의 희망으로 채워지는 걸 보게 되면서 일상의 반복에 서서히 매몰되는 너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너는 널 지켜낸다. 따뜻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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