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새로운 기차 여행
2017 겨울 강릉
지난 두 달 동안 마리아의 지친 심신을 뉘었던 텅 빈 침상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 고단했던 짧은 생애에 작은 위로라도 보태고자 차디찬 침대 시트의 귀퉁이를 연신 어루만졌다.
“평온하게 떠났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나의 헤진 소매 끝만큼이나 반들반들 닳아 버린 테레사 수녀의 나무 묵주 알이 보였다.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번 쉽지 않군요.”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떠나보내는 이가 떠난 사람보다 더 힘든 법이지요.”
수녀가 침상 위에 놓인 성모 마리아상을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마음껏 그리워해서 모두가 조금은 덜 아팠으면 좋겠어요.”
“외로움 때문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테니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강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잖아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몸 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던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아이는 밑바닥 인생을 그 작은 몸뚱어리 하나로 닥치는 대로 부딪히며 견뎌왔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해서, 무엇보다 어린 그녀를 돌봐줄 그 아무도 없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떠돌다 병을 얻었다. 통증을 못 견딜 지경이 돼서야 이곳 강릉의 케이시 센터까지 오게 되었다. 제일 나이 어린 환자였다.
케이시 센터는 무료 호스피스 병원이다. 독지가가 기증한 해안가 안쪽 시장통의 나대지에 3층 건물을 새로 지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마지막을 살펴주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자원봉사를 나올 때마다 그 아이의 병실에 들러 알록달록한 새알 초콜릿을 머리맡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처음엔 손도 대지 않던 그 초콜릿이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린 자연스레 말동무가 되었다. 테레사 수녀를 통해 마리아란 세례명을 갖게 된 즈음부터 퀭한 눈동자에서 차가운 원망과 두려움의 고통 위로 옅은 온기가 스며 나왔다.
햇살이 따스한 이른 오후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휠체어로 울퉁불퉁한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일단 제방 위로 나오면 시야가 딱 트인 바다가 마주 보인다. 3월의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춥지 않니?”
“추운 건 참을 수 있는데... 내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니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워요.”
그녀의 여윈 몸을 무릎 위에 놓인 담요로 한 번 더 감싸주었다.
“죽음에는 많은 다른 이름들이 있단다. 저렇게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처럼 죽음은 왔다가 돌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우리 그걸 여행이라고 불러볼까?”
“여행이요?”
“그래. 때가 되면 밀려오고 밀려가는 저 파도처럼.”
“정거장의 기차처럼요.”
“그렇지. 정거장의 기차처럼. 그럼 이제부터 우리 기차 여행이라고 부를까?”
“그래요. 기차 여행! 기차 여행하면 공연히 맘이 설레잖아요.”
“그러자꾸나. 기차 여행, 마리아의 새로운 기차 여행!”
“기차가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면 좋겠어요.”
잠깐의 산책시간을 빼곤 하루 종일 병실에 누워있는 마리아를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벌써 두 번이나 읽어주었다.
“헤어진다는 것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가 봐요. 할아버지와도, 페테도, 클라라 모두와도 말이에요”
“슬픔도 마찬가지겠지.”
물끄러미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마리아에게 오래전에 보았던 ‘마르셀리노의 기적’이란 영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황폐해진 스페인의 마을. 산촌의 수도원에 갓난아기가 버려지고 아이는 수도원의 수사들에 의해 개구쟁이 꼬마 마르셀리노로 키워진다. 마르셀리노는 수사로부터 누구나 어머니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어느 날 금지된 다락방에 몰래 숨어든 마르셀리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나무 예수상을 보고 불쌍히 여겨 빵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서 엄마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의 믿음에 탄복한 예수는 마르셀리노 앞에 나타나는 기적을 행하며 가져다 놓은 빵을 먹고 마르셀리노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계속 빵과 포도주를 몰래 가져다 예수상 앞에 놓아두는 마르셀리노에게 예수는 소원을 얘기해보라고 말한다. 마르셀리노는 단 하나의 소원인 엄마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예수는 어린 소년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마르셀리노를 품에 안아 잠들게 해 준다. 다락방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모여든 수사들은 이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며 감격하지만, 마르셀리노는 다시 나무상이 된 예수상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날 때마다 난 이 영화를 생각한단다. 슬픔의 고통도, 공포가 많이 사라지거든. 왠지 알겠니?”
마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지. 기차를 타면 나도 그 사람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죽는, 아니 새로운 기차 여행이 덜 무서울 것 같아요.”
“네가 가는 곳은 하나의 여행이 끝나는 종착역이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정거장이란다. 우리 모두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지. 마르셀리노처럼 너의 종착역에서 내리면 다음엔 엄마와 함께 아름다운 기차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을 거야.”
엄마 이야기가 나오자 마리아의 눈가에 금세 물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지금까지 원망만 했어요. 엄마를 만나면 왜 날 버렸느냐고 마구 따질래요. 나를 지켜 주지 않아서, 아니 내 곁에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마구 화낼 거예요.”
그녀의 작고 마른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 그러려무나.”
“그런데요, 선생님. 막상 엄마를 보면 울음부터 마구 터져 나올 것 같아요. 그 보다 엄마를 어떻게 알아보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듯이 만나지 않아도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단다.”
마리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제게 두 가지 소원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지?”
“하나는 마르셀리노처럼 엄마를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아이의 두 번째 소원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었다. 테레사 수녀, 담당의 최 박사,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들,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마리아를 위해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 아이의 두 번째 소원이었다. 마리아는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알록달록한 삼각 생일 모자를 썼다. 빨간 모자에 쓰인 ‘행복한 인생’이란 노란색 글자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테레사 수녀의 기타 반주에 맞춰 모두가 생일 축가를 함께 부르고 나자, 열일곱 개의 작은 촛불이 꽂힌 케이크를 앞에 두고 마리아가 말했다.
“행복해요.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기는 난생처음이거든요. 이게 마지막이 되겠지만요. 슬퍼할 시간이 없네요. 여긴 온 뒤론 모든 것이 새롭고 감사합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기뻐요.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힘겹게 양 손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인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의 두 눈은 이미 빨갛게 젖어 버린 지 오래였다.
마리아가 혼수상태로 빠져 든 후에도 그 아이의 머리맡에서 ‘하이디’를 계속 읽어주었다. 세 번째 읽는 것이 거의 끝날 무렵 책을 덮어야 했다. 테레사 수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마리아의 유품입니다. 그냥 태워버릴 까 하다가 그 아이가 왔다 간 작은 흔적이라도 누군가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맡아주세요.”
색 바랜 회색 종이 상자 옆면엔 ‘신성 제화’라는 상표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구두 상자 안엔 자주색 스카프, 흰 양말 다섯 켤레, 꽃무늬가 새겨진 흰색 자수 손수건 하나, 센터에 온 후 마리아가 즐겨 마시던 레몬 홍차 티백 열 개, 생일 선물로 받은 묵주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의식을 잃기 전에 제게 말하더군요. 곧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따뜻한 남쪽나라의 해안가에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얼음 띄운 레몬 홍차를 마실 수 있을 거라고요.”
수녀의 말에 아득히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작은 기쁨이 스쳐갔다.
“녀석,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곳 언 땅에서의 삶이 워낙 팍팍했었어야지요.”
후회 없이 훌훌 털고 떠났다는 걸 안다.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마리아를 보면서 어두운 음지 속에서 절망과 외로움으로 지친 그녀가 작은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으로 큰 위안을 삼았다. 이승에서의 허물을 벗고 떠났기에 가슴 한 편이 뜨겁게 차오른다. 한편으론 함께 따스한 홍차를 마시면서 바닥에 흩어진 울긋불긋한 낙엽이나 노을 지는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사소한 일상을 감사할 수 있었던 친구와의 이별이 슬프다. 사라지는 것, 헤어짐을 감내해야 할 때마다 가슴 한 조각이 찢겨나가 듯 아프다. 그 아픔이 그리움으로 바뀔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할까.
‘이 녀석, 잘 가거라. 또 만나게 될 거야. 언 땅에서의 힘든 노동을 마쳤으니 따뜻하고 고통 없는 곳에 가서 네가 좋아하는 레몬 홍차를 실컷 마시렴.’
센터를 나왔다.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니 바닷가 놀이터가 보인다. 딱딱한 모래사장 위에 그네 두 개, 고장 난 시소 하나, 다른 키 높이의 철봉대 두 개가 전부다. 비어 있는 벤치에 걸쳐 앉아 저린 가슴을 잠시 보듬어 본다. 마리아의 유품 상자를 쥔 손등 위로 이른 새벽의 하얀 고독이 살포시 내려와 앉았다.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선물할 것이라며 준비해둔 것이라고 하더군요.’
수녀의 말이 생각나자, 상자를 열고 스카프와 곱게 접은 양말, 손수건을 하나씩 꺼내 만져 보았다. 모두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것이었다.
시린 아픔이 썰렁하게 비어 버린 가슴 안쪽을 마구 할퀴어대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면 마음껏 엉엉 울게. 화가 나면 마음껏 소리를 질러보는 것도 좋고. 웃음이 나오거든 이때다 싶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큰 소리를 내서 실컷 웃는 거야. 마치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처럼.’
비릿한 소금 내음 때문인가? 간간이 들려오는 기적 소리 때문인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표 회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네 아는가?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야 더 잘 웃을 수 있거든. 가장 절망스러울 때 한 바탕 웃음으로 당당하게 맞서 보는 거야. 시원하게 웃어 주는 거지.’
언제나 흰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긴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 회장의 얼굴이 다시 스쳐 갔다. 해안가 벤치에 앉은 내가 넋 빠진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웃어 보았다.
“하하하 하하…….’
눈자위가 빨갛게 젖을 만큼 웃고 나니, 해안가 아래 작은 불빛들이 멀리서 가물거린다. 이런 겨울의 새벽이 낯설지 않다. 언 유리창에 내린 서리 결처럼 뿌연 기억의 뭉치들이 한두 겹씩 풀리며 녹아내린다. 10년쯤 전이었던가. 아스라한 기적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이곳 강릉에서 멀지 않은 동해 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