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둘 - 기적소리
직업란에 ‘사진 기자’라고 간단하게 쓰던 7년 전에 비해 이것저것 복잡하고 앞뒤로 설명이 필요한 직업들을 여럿 전전했다. 인정받지 못한 사진작가가 잠시 됐었고, 고작 3백 부도 팔지 못한 책의 저자, 실직자의 포장된 다른 이름이었던 프리랜서, 파트타임 여행사 직원,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었던 영화사 홍보부 직원을 거쳤다.
사진작가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졌을 땐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생각했다. 앞만 보고 뛰었다. 그 치열한 경주에서 볼썽사납게 고꾸라지면서 달리던 기차에서 튕겨져 나와 쓰러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떠나가는 기차 안을 바라보니 여전히 앞을 보고 뛰는 사람들이 엎치락뒤치락 대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기차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리자, 그 안의 승객들처럼 서두를 것도 조바심 낼 것도 없었다. 동해로 돌아와 비린내 섞인 해풍을 맞으며 몇 개월 허우적거리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가끔씩 돌아다보니, 저만치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내가 보였다. 갈 곳을 잃어버린 지친 모습의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리며 서 있다. 그 어리석음에 조소와 동정심을 뒤섞어 분노를 마구 퍼부어 댔다. 좌절의 늪 속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옆에서 보다 못한 사진 선배들과 친구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속초에서 진행된 잡지사 의상 카탈로그 촬영 등 단발 프리랜서 일감이 내게 떨어졌고, 영화사 홍보 팀에 합류해 강원도 로케 현장의 사진도 찍게 되었다.
바로 그 현장에서였다. 어둠에서 나를 꺼내 준 빛을 만난 건.
그 빛은 처음엔 아무런 존재도 나타내지 않았다. 마치 조그만 압정이 두터운 어둠의 막을 꿰뚫고 실낱 같은 빛을 비추일 때까지 난 아무런 희망도 기대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 스며든 빛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밝은 빛을 만들어냈다. 그 빛은 순식간에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 버렸고 내 가슴 깊숙이 마구 뜯긴 채 버려진 상처들의 굳은 고름들을 녹여낼 만큼 뜨거웠다.
강릉 초등학교 교정에서 영화 '노란 개구리들의 합창'의 촬영이 한창이다. 제작사의 현지 엑스트라 조달 방침에 따라 초등학교 아이들 30여 명을 엑스트라로 썼다. 체육교사로 분한 주인공이 애들과 학교 운동장을 함께 뛰는데, NG가 계속 나는 바람에 촬영이 예정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다. 엑스트라 중에 한 아이가 유난히 뜀박질이 늦고 조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못했다. 가까이 보니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학생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난 감독이 어이없어하더니 조감독에게 일갈했다.
"뭐야. 이거…. 그림 버리게. 야, 쟤 당장 못 빼?"
"알겠습니다."
안절부절못하던 조감독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서는 순간, 다른 학생들과 촬영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여교사가 조감독에게 살짝 목례를 하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감독 앞에 섰다.
"저 아이들의 담임인 서진영이라고 합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니 정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촬영에 참여하게 해 주세요. 정수가 촬영을 많이 기다렸답니다.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감독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거 보세요 선생님. 보시다시피 촬영이 안 되지 않습니까? 쟤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잘 못하는 거 같은데. 이건 장애인 영화가 아니에요. 쟤는 무슨 특수학교나 그런 데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여교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에게 필요한 건 예외 규정이나 특수 교육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애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취급해주는 겁니다. 부족한 부분은 제가 잘 설명을 해주겠습니다."
인내심을 드러낸 감독이 짜증 난 목소리로 와락 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봐요, 정상이 아닌데 어떻게 똑같이 취급을 해? 빨리 저 애 데리고 물러나세요. 말장난할 시간 없으니."
감독의 노골적인 무시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여교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자, 감독은 촬영 현장에 있던 모두가 들으라는 듯 툭 하니 내뱉었다.
"있으나 마나 한 엑스트라 한 명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 자, 빨리 서두릅시다."
그 말을 듣고 막 돌아서던 여교사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감독님껜 정수가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존재일지 모르겠지만 제겐 아이들의 순수함을 쉼 없이 일깨워주는 소중한 아이랍니다. 그래서 전 항상 감사해요. 정수도 우리처럼 똑같이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합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죠. 더 많은 사랑이란 특별대우가 결코 아닙니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받아주는 것인데 감독님에겐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지 미처 몰랐네요."
말을 마친 여교사가 저 만치서 고개를 비스듬히 세운 채 서 있는 정수의 손을 잡더니 운동장 옆의 놀이터로 가서 앉았다. 곧 정수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놓칠세라 난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찍어야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여선생은 분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얼굴은 애써 웃음 지으며 연신 정수란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무표정한 정수의 얼굴을 마주한 채 웃음과 울음이 매 순간마다 동시에 교차되고 있는 여선생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잠시 머쓱해하던 현장 인원들이 감독의 지시에 따르면서 촬영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운동장에서 뛰던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씩 그 여교사와 정수 옆으로 모여들면서 촬영은 다시 중단되었다. 감독은 들고 있던 대본을 바닥에 내팽개쳤고, 급기야는 교장 선생님까지 나오자 애꿎은 조감독만 감독과 교장 사이에서 진땀을 흘렸다. 서진영이란 여선생이 감독에게 했던 말이 한동안 내 마음을 울렸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주는 겁니다."
얼마나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인가! 아이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의 장점을 찾아내 인정해주는 것, 그를 중요한 존재로 대하고 감사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운동장에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고대했던 영화 촬영 기회를 마다하고 저 여교사에게로 모이게 한 힘일 것이다.
다음날 전날 찍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정수와 서진영 선생의 사진을 골라 뽑아 학교로 찾아갔다. 점심시간인지 4월의 봄볕이 따사롭게 운동장을 내리쬐고 있다. 뛰어노는 아이들을 간간이 내려다보며 그녀가 그늘 진 계단에 앉아 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책을 읽고 있는 그녀를 저만치서 발견하자, 내가 긴장하고 있음에 잠시 당황했다.
그녀 앞에 다가섰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어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갑자기 뱃속에서 무언가 크게 울렁거렸다.
"저는 강바다라고 합니다. 이번 노-개-합 제작을 맡은 영화사에서 홍보 사진 담당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그런데요’라고 눈으로 물었다.
"어제… 정수였나요? 우연찮게 그 자리에서 선생님과 정수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가져온 사진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거들떠도 안 본 채 영화제작사 직원이라는 말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쪽 영화사 사람들은 무례한 데다 기본 예의마저 없군요."
"네?"
그녀의 적대적인 반응에 놀라 움찔했다.
"허락도 없이 사람을 몰래 찍는 이런 이상한 취미 말이에요."
그녀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이어폰을 잡아 귀에다 꽂으려 하자, 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정수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동안 많은 인물 사진들을 찍어 왔지만 이것이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사진을 그녀의 턱밑까지 내밀었다. 내친김이었고 여기서 맥없이 물러설 순 없었다.
그제야 그녀가 손길을 멈추더니 말없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기왕 예의에 어긋난 김에 저 멋대로 사진 제목까지 붙여 봤습니다. 사진 뒤에."
그녀가 천천히 사진을 뒤집더니 한참 동안 제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선생님, 당신이 제 곁에 있어서 행복해요.'
벚꽃 봉우리가 터질 듯 활짝 웃는 강릉 초고에서
2005년 4월 <사진=강바다>
그녀가 아무 말없이 한참 동안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후 나를 올려다보며 짧게 말했다.
"정수가 좋아하겠네요."
어제 보았던 그 환한 미소가 찰나의 순간처럼 그녀의 입가 위로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칠 수가 없었다. 마치 섬광처럼 번쩍였다 사라진 그 미소를, 그 빛을 보면서 난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 나오는 힘찬 기적 소리를 들었다.
“정수가 빠지고 재촬영이 시작되니 영화사 쪽엔 쓸모가 없게 된 스틸 컷들입니다. 정수에겐 작지만 소중한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제 현장에서 찍은 나머지 사진들을 내밀었다.
그 첫 만남 이후 그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동해와 강릉 사이를 하루가 멀다 하고 왕복했다. 로케 현장 사진 촬영 때문이었지만 그녀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이 조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와 만날 기회가 늘어났다. 엉뚱한 핑계도 만들어냈다. 내겐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 밖엔 없었다. 달빛 아래 반짝이는 밤바다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며 그녀에게로 달렸다. 30분 아니 단 5분을 함께 있기 위해 강릉으로 튀어나갔다. 영원 같았던 나의 어둠을 깨고 들어온 그 밝은 빛을 절대 놓아줄 수 없었다. 가슴 저리게 울려 퍼지는 그 기적소리를 들으며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발동했다.
나의 어둠을 깨부순 그 환한 빛을 다시 아니, 항상 보고 싶었다. 그 빛은 바닥에 자빠져 질척거리고 있는 내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내민 힘찬 희망의 손이었고 ‘이제 힘을 내봐요’라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싱그러운 격려였다.
그 빛도 내가 내민 손을 처음엔 머뭇거리더니 이내 꽉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