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셋 - 건널목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 몰랐어."
진영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버스 정류장 바닥에 내려놓았던 카메라 가방을 집어 들며 내가 주저 없이 내뱉었다.
"자신 없어, 난."
등을 돌리고 버스를 타려는 내 팔을 진영이 힘껏 잡았다. 가냘픈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 멈춰 섰다. 화난 표정이었지만 먼저 나에 대해 엄습한 실망감, 그 위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는 단호한 의지가 겹쳐져 보였다. 굳게 다문 그녀의 입술이 조금 벌어지더니 눈꺼풀이 바르르 떨었다. 그녀의 윗입술이 움찔 흔들리더니 눈이 작아지면서 얼굴이 움츠려 들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영락없이 싸래 가지 같은 눈물을 줄줄 떨어뜨릴 기세였다.
촬영장에서 만난 지 7개월 후 나를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시키고 집에서 나오면서였다. 그건 첫 대면을 빙자한 청문회였다. 집안 내력부터 내 학력, 경력에 관한 온갖 질문들이 순서대로 쏟아져 나왔다. 처음엔 '애지중지 키운 딸자식이니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웃음 띤 얼굴로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대학병원 정신과 과장이라는 그녀 아버지의 탐탁지 않은 눈빛, 성형외과 의사라는 과묵한 큰 오빠, 군의관으로 막 제대한 둘째 오빠의 노골적인 무시,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그녀 어머니의 안타까운 눈초리 속에 점점 속이 불편해졌다.
어릴 적부터 집안끼리 알고 지내온 의사이자 둘째의 친구인 안상철이란 남자와의 결혼을 온 가족이 당연시 해왔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진영은 처음부터 그와 결혼할 의사가 없었음을 분명하게 상기시켰지만, 내가 나타나자 그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 버린 듯했다. 그녀의 작은 오빠로부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동생과 사귀었느냐"는 소리까지 듣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뒤따라 나온 진영에게 한 술 더 뜨며 비아냥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환대였어. 마치 조선 시대 때 귀한 양반집 규수를 넘본 무슨 머슴 놈이 된 기분이야. 재미있지 않아? 하하하"
비참한 심정을 감추려 일부러 큰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바로 말을 받았다.
"난 포기하지 않아."
"널 억지로 데려오고 싶지 않아. 너희 식구들이 하는 얘기가 틀린 말도 아니고."
"오빠가 이처럼 쉽게 포기할 줄 몰랐어."
"그렇지 않겠어? 나랑 결혼하면 지지리 고생만 할 텐데. 너도 생각해 봐라. 의사 남편 만나면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평생 호강할 텐데 뭐 때문에 나 같은 고아에다 가난뱅이랑…"
말이 끝나기 전에 눈앞에서 딱불이 번쩍거리는 가 싶었다. 내 따귀를 보기 좋게 때린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떨고 서 있다. 언제나 보일 듯 말 듯 한 아름다운 미소만 머물 줄 알았던 그녀의 입가가 뒤틀리는 듯싶더니 장대비 같은 굵은 눈물이 소리 없이 주룩주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뜨거운 나의 심장도 순식간에 수많은 파편들로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 요란스러웠던 가족 청문회가 열린 지 두 달 후 우린 결혼했다. 나의 선후배들과 그녀의 가까운 친구, 정수를 포함한 진영의 몇몇 학생 모두 합쳐 스무 명 남짓 참석한 단골집 ‘동해식당’에서의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가수 지망생인 후배의 기타 반주로 시작된 축가 ‘신부에게’는 시작부터 모두의 합창으로 이어졌다.
고급스러운 예식장도,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딴 따다 딴' 하는 피아노 반주도, 많은 하객들의 요란한 축하도 없었지만 우린, 특히 난 천하를 얻은 듯 행복했다. 결혼식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나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란 자작시를 낭독했다.
“당신은 내게 나 보다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세상천지 나 혼자라는 고독감과
외로움이 단숨에 씻겨 내려갔습니다.
어둠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그대
그대로 인해 내가 우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우리입니다
우리는 당신입니다
당신은 내게 나 보다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까지”
음악 교사인 5월의 신부는 청아한 목소리로 기타 반주에 맞춰 ‘내가 원하는 건 당신 곁에 있는 것뿐 (I only want be with you)’을 불러 답했다.
“당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다만 당신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내 마음만은 분명히 알죠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모르겠어요
처음 만난 그날부터 당신은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걸
변치 않는 진실은 이거예요
난 오직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것”
동해 시 외곽에 셋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프리랜서 일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 없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뛰어다녔다. 피 말리는 기다림과 좌절의 끝에서 동향 선배인 홍덕만 원주대 교수의 도움으로 겨우 사진학과 시간 강사 자리를 얻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비록 3등석이지만 기차표를 다시 손에 움켜 쥔 것이다.
동해로 옮겨오면서 부득이 진영은 초등학교 교사 직을 그만둬야 했고, 동해 유치원의 임시 보모가 되었다. 더 이상 나 홀로 여행이 아니다. 아내 진영과 함께 하는 두 사람의 꿈과 미래가 담긴 새로운 출발이다. 마음 같아선 원주까지 매일 출퇴근하고 싶었지만 왕복 8시간을 기차로 통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평일에는 기러기 아빠인 홍 교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원주 대학서 강의하고, 금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아내와의 보금자리인 동해로 돌아오기로 했다.
이때부터 나의 기차 여행은 두 개의 시간표로 이루어졌다. 월요일 새벽 5시 일터로 떠나는 원주 행 열차 시간과 금요일 오후 3시 동해 역으로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다. 그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언제나 허겁지겁했다. 월요일 새벽 원주행 기차에 오르는 것은 고문이었다. 이른 새벽기차가 싫어서라기 보다 진영과 일주일이나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끔찍하고 버거웠다. 금요일 동해행은 더디게 움직이는 기차 때문에 마음만 조급했다.
다른 이들에겐 하루 단위로 이뤄지는 출퇴근 시간이 주 단위로 바뀌었다는 걸 받아들였을 즈음, 일상의 호흡도 덩달아 느리고 길어졌다. 그 느린 일상도 주말만은 예외다. 새벽 출근길의 스산함과 서두름이 사라진 금요일 오후, 동해로 돌아오는 4시간의 기차 여행은 늘 설레고 행복하다. 아내 진영이 기다리고 있는 집, 보잘것없는 연립주택 세 집이었지만 그곳은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다'라고 행복감에 취해버린 그 주말을 기다리며 한 주 한 주를 견디었다.
매일 출퇴근이 가능한 강릉대로 옮긴다는 단기 목표부터 세웠다. 그런 다음엔 안정적인 전임강사 자리를 잡는 게 급선무였다. 사회의 때를 묻혀가며 뒹굴기로 작정했다. 내가 아닌 진영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곧 일등석으로 옮겨 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매 순간순간 이를 악물었다. 잡지사 기자 시절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를테면 내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윗사람들에게 세배를 다닌다거나, 특등석에서 군림하는 대학 실세들을 찾아다니며 강원도 특산물을 돌리는 등 낯선 처세의 기본 잔재주부터 익혀야 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무턱대고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학과장이 이사할 때 이삿짐을 날랐다. 진영도 따라나서겠다고 했지만 “절대 안 돼”라고 두 말 못 하게 했다. 바닥을 박박 기는 건 나 혼자로도 족했다. 진창을 굴러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생경스럽기만 했다. 힘들고 굴욕스러운 건 참을 수 있었다. 외로움도 견딜 수 있었다. 진영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결혼식 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내 휴대폰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지루한 기차여행 동안, 학교에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때, 원주에서의 잠 안 오는 밤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 곁에 있는 것뿐’을 수줍은 듯 부르는 그녀를 찾아보면서 내 영혼의 빈 곳을 채운다. 작은 스크린 속의 사랑스러운 그녀를 어루만지듯 바라보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헛헛함을 달래었다.
정작 힘든 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에 따른 대가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가혹하기까지 하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재고 정리나 할인점의 세일 상품만 찾아다니고, 온갖 숫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 가계부를 보면서 몰래 한숨짓는 그녀를 보면서 내 가슴 안쪽도 점점 시퍼렇게 멍들어갔다.
온통 내 머릿속엔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