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내려오기 전에

기차 여행 - 열다섯

by 강바다

잭 캔필드는 그의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머릿속에 넣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생을 성취하고 영위하는데 필요한 오프라 10 계명을 만들어 알리고 있다니 나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갖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 10가지’를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10가지 리스트의 첫 번째 칸엔 공교롭게도 똑같은 것이 올라와 있다. 바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다음이니 건강은 건강할 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순위가 됐다. 그런 다음 내가 처한 상황과 여건에 관계없이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리스트에 적어가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미 파산했고 건강까지 다 잃었다가 기사회생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그대로 "죽음은 생을 위한 가장 큰 선물"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이 내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인지 명확해지기 때문에 그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외신 뉴스에서 사형수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강도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J.O (41)가 전날 오후 6시 13분 사형에 처해졌다는 내용이다. 17년간 사형수로 복역하면서 통신교육으로 경영학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독학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해 완성한 작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사면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서신을 교환했던 할리우드의 강경한 사형폐지론자인 여배우 수잔 서랜든은 그의 사형집행이 결정된 후 직접 교도소를 찾아 2시간에 걸친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수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은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사형 집행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피해자 가족에겐 용서를, 가족과 지인들에겐 그들의 지속적인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말을 남기고 독약이 주입된 주사를 맞은 지 9분 후 사망했다. 처형 직전 마지막 식사로는 양상추와 토마토에 샐러드드레싱을 뿌린 베이컨 치즈버거, 토마토케첩을 잔뜩 뿌린 감자튀김, 그리고 바나나 푸딩과 수박을 후식으로 요청했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그의 형이 10년 전에 사형당한 것을 고려하면, 그는 지난 10년 동안 언제 올는지 모르는 그러나 확실히 오게 될 이 죽음을 항시 의식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로선 기나긴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결국 사형 날짜를 통고받았다. 막연했던 기다림이 확실한 숫자가 된 것이다.


우리도 결국엔 같은 입장이다.

10년 이든 1년이든 그 끝은 확실히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는지 모르는 우발적인 사고와 내재된 온갖 질병의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우리 역시 매일매일을 언제 올는지 모르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생활한다. 이를 의도적으로 잊기 위해 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정신없이 사들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지방의 맛집들까지 애써 찾아다니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명소 50곳'을 하나씩 체크하면서 뿌듯해한다. 생이 유한하다는 것, 영원히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것을 일깨워주는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기도 하고 얼굴 피부 전체를 외과수술로 잡아당겨 보기도 한다. 아름답고 싶어서라고 한다. 또는 추함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늙는다는 것,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자각과 무언의 확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actor-on-stage.jpg

회복 기간 내내 '우리의 생이란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극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무대 위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온갖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지만 그 극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지면,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와 평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모든 평가가 늘 언제나 그래 왔듯 점수가 매겨질 것이다.

그 채점의 기준이 무엇이냐가 바로 생의 비밀과 직결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평가 대상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평균 약 70년 안팎의 한정된 순간 동안 발생한 사건들의 집합이 된다. 점수는 수/우/미/양/가는 아닐 테고, 합격/불합격으로 간단하게 가려질 것이다.

애초 무대에 오를 기회를 부여한 절대자 앞에 서서 심판을 기다리는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오래전 어느 겨울, 대학 합격여부를 기다릴 때완 비교도 할 수 없이 떨릴 것이다. 나를 추궁하는 검사 또는 변호사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는 하나의 짧은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주어진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장관에다 국회의원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당당한 명예를 쌓았습니다”
“30억짜리 집과 건물 세 채를 포함해 이만큼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실패입니다. 다시 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를 따서 고속승진을 거듭해 사회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살다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계속 뛰었습니다.”

“다 끝났는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저는 자동차 전문가로 50대의 자동차를 수집해 박물관에 남겼습니다.”

“쉴 새 없이 놀고 마시고 즐기며 실컷 쾌락을 향유했습니다”

“………………………….”

“만족합니다. 남한테 커다란 해 끼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앞뒤 없이 바쁘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는 게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피곤하기만 합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만큼이나 온갖 총천연색의 답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어떤 답변은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고 또 어떤 답변은 의외로 간단할 것이다. 물음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어물쩡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면 부끄러울 것이다. 뒤늦게 자신에 대한 변호로 일관해야 하는 이도 가엾긴 마찬가지다.

염세주의자의 답엔 정열이 결핍되어 있을 것이고,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쾌락주의자의 경우엔 순간이 지나 버린 이후에 던져진 물음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무대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는다면 비통과 후회로 가슴을 치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예외 없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의 연기에 아랑곳없이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원하는 혼신의 연기를 펼치려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평가의 기준이 아닐까.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이전 15화황제의 아침 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