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여름,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차 여행 - 열여섯

by 강바다

웬만큼 몸을 추스르게 되면서 퇴원 후 열흘 정도가 지나고 돌아온 첫 번째 주일이었다. 아내에게 부탁해 일요일 저녁 미사를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성 베드로 성당으로 기억한다.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성당 안에서 몇 시간이라도 무릎을 꿇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강바다>

먼저 고해성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고해성사! 그걸 마지막으로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선 영어로 해야 한다는 핑곗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한 번도 안 했으니 뉴질랜드로 오기 훨씬 전이었을 것이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해소로 들어가 무릎을 꿇자 오래전에 맡았던 ‘성당 냄새’에 나도 모르게 목이 잠겼다.

아내와 아이들 곁에 더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와 함께 오랜 시간 묵혀 놓아 기억도 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사 청하였다. 두서없이 마구 쏟아내는 내 영어로 된, 고백인지 독백인지 거의 주절거림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한참 동안 말없이 듣고 계시던 뉴질랜드 신부님이 천천히 말씀하셨다.

“고통도 축복입니다. 고통이 깊을수록 기쁨도 큰 법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지만, 사랑이신 그분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니 고통 속에 있을 때나 기쁨 속에 있을 때나 그분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는 자세로 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세요.
그 마음을 깊게 되새기면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오더라도
다시 감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할 수 있는 용기!’
그 낯익은 단어의 부 조화스러운 배합, 그 신선하고 마력과도 같은 언어의 힘이 달궈진 불화살처럼 내 가슴을 꿰찔렀다. 그것은 꿈틀거리며 내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상의 지침이자 근간이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용기를 잊지 않는다면, 결코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강바다>

네 일상은 다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신록이 가득한 숲을 양옆에 두고 보란 듯 한껏 가로지르며 도도하게 흐를 것이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과 산들바람에 떨리는 잎사귀들, 숲 전체가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걸 보고 들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격류에 말려들어 심한 소용돌이도 만들어 낼 것이다. 모난 강둑에 쉼 없이 부딪히며 제자리를 못 찾고 흔들릴 것이다. 그렇게 지치면 강바닥까지 잠겨 들만큼 맥없이 풀어질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럴 때 흔들릴 수 있어서… 부딪힐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는 힘을 토해낸다면 바다로 가는 강의 여정이, 그 여정 자체가 가치 있을 것이다.
그 여정 중에 나의 꿈을 좇아야겠다. 스트레스, 고통, 불안, 두려움, 모험심, 자유, 진지함, 도전 등을 한바탕 뒤집어 범벅을 만든 후 거기서 배어 나온 여유와 용기를 ‘나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을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삼아 과정의 순간순간을 남김없이 즐겨야 하겠다.

<사진=강바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이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목적지로 가는데 수천수만 갈래의 길이 있을 테지만, 모든 길의 목적지는 결국 하나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 또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면서 투덜대기보다 기왕이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여정을 즐기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시인의 얘기처럼 꽃이란 피고 지는 것인데, 소나기에 진 꽃을 보며 소나기를 탓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 소나기가 내린 것에 감사한다면 무수한 작은 기적들과 끊임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잘 안다 여행이 힘들다는 것을. 가다 보면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얻지 못하는 것들도 너무 많다. 남들은 다 갖추고 있는 듯한데 난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길이 더 넓어 보이고 편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고개를 돌리면 나의 길 보다 좁고 험난한 길들도 무수하게 많다. 그러니 길은 길대로 놔두고 이 기차 여행의 의미를 찬찬히 음미해본다.

계획한 대로 여행이 순조롭지 않아 낙담도 하고, 낙담이 깊어지면 절망이 되고 그 절망은 습관이 된다. 하지만 이 여정 자체가 내게 주어진 사실에 감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낙담하고 절망하면서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대신 언제든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다고 미소 지으면 훨씬 좋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다.

신선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기쁘다. 밤에 어렴풋이 눈을 뜨고 이대로 잠들다가 안 깨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새벽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면 어느새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이제 매일매일 새로운 나날들이 펼쳐지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샤워를 맘껏 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출근하는 것도 감사하다. 거리에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들, 출근길이 바쁜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그 해'가 내 생애의 마지막 해였더라면 이 사람들과 마주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냥 반갑다. 눈인사라도 부드럽게 건네고, 밝은 미소라도 나누고 싶다. 거리에 마주치는 사람들 뿐 아니다.
2월의 뜨거운 햇살도 감사하다.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 흐르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푸른 잔디 위를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공원 저 아래 파빌리온에서 들려오는 스윙 밴드의 경쾌한 음악소리에도 가슴을 뿌듯하다. 타카푸나 해변가에서 한 여름을 만끽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을 보니, 그들이 행복해 보여서 행복하다.

정신이 번쩍 나는 아침의 에스프레소, 점심 약속, 오후에 후드득 떨어지는 소나기, 창밖에서 바람을 타고 바스스 떨고 있는 나무 잎사귀들, 긴장 속에서도 유머가 난무하는 부서 회의, 나른한 오후 사무실 뒤편 포후투카와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 집안에 들어 서면 아내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고, TV를 보던 아이들의 무덤덤한 인사마저 정겹다.

그냥 감사하다. 살아 있어서 감사하기보다 감사할 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사진=강바다>

우두커니 선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의 인기척을 느낀 탓인가.

앞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했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향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얼굴이 터질 듯 미소를 한가득 안은 채.

아름다운 2월의 여름날 오후, 내가 그 일부가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행복하여라 베풀 것이 풍부한 사람이여.
병든 아이가 있으면 그를 안아 주기 위해 갈 것이다.
고달픈 노모가 있으면 한 그릇의 밥을 건네기 위해 갈 것이다.
죽어가는 이가 있으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기 위해 갈 것이다.
그런 사람이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베풀기 위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가는, 그런 사람이다.

- 미야자와 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