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 열여덟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 소포클레스 -
37세의 파울로는 이태리 로마의 병원 구석구석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짧게 깎은 그의 엷은 갈색 머리칼은 이미 절반 이상이 백발로 탈색된 데다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 살집이 완전히 빠져버린 길고 마른 얼굴은 광대뼈만 유난스레 툭 두드러지게 나와 병색이 뚜렷했다. 쉰 살이 넘었다고 해도 쉽게 믿어버릴 만큼 노쇠해 보였다. 2년여 가까이 끌어온 불치병으로 생긴 각종 부작용의 치료를 위해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입원 기간은 점점 장기가 되고 퇴원 후 재입원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환자 스스로도 더 이상 호전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가족들도 더 이상 쉬쉬할 수 없게 되자, 말기암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담당의사는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가족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주었다. 파울로는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다니면서 병원과 의사, 검사와 약물치료라면 이골이 난 상태였다. 아무도 입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회생의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에 절망하고 희망마저 잃어버린 그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남자 간호사에게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넌 뭘 하는 간호사야?”
간호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난 당신이 죽음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라고 표정 하나 흩뜨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들마저 분노를 터뜨리며 경악했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금기의 단어였다. 환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 아무도 이 최후의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으며 회피해왔다.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은 곧 죽을 겁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차분히 마지막을 준비해야 합니다.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모두가 힘들고, 특히 당신이 가장 많이 힘듭니다. 죽을 준비를 하세요. 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일입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동안 쌓여온 좌절감과 슬픔, 대상을 찾을 수 없었던 막연한 분노의 칼끝이 대번에 그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환자 가족들에게 멱살까지 잡히며 한바탕 곤욕을 치렀음에도 간호사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죽음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란스럽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준비’를 시작한 파울로는 그 간호사와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되었고, 6개월이 아닌 14개월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남자 간호사의 이름은 에디슨, 내가 에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웰링턴에서 만난 친구다.
‘전체 인구의 85%가 가톨릭, 10%가 가톨릭 신부, 나머지 5%가 가톨릭 주교’라고 곧잘 농담하는 브라질 출신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평생을 신부처럼 독신으로 살기로 서약했다는 그는 이태리 로마에서 간호사로 10년 넘게 살았고 스위스에서 2년 넘게 공부했다. 로마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정신병동, 외과병동, 호스피스 병동을 두루 거치면서 다양한 환자들과 숱한 일화를 만들어 냈으며,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는 에디가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시절에 실지로 겪은 경험담이다.
에디에 따르면 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죽음은 심장마비로 인한 급사라고 한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심장마비로 한 순간의 짧은 고통 속에 빨리 깨끗하게 숨이 끊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중풍이나 알츠하이머, 파킨슨씨 병과 같은 서서히 죽어가는 뇌질환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천천히 잃어가면서 식 물화되어가는 죽음의 과정이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처참한 모습으로 끝까지 사랑하는 가족들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 것이다.
‘장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이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죽음을 기다리는 당사자 못지않게 힘든 고통임을 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진저리 치게 경험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얻지 않은, 절대자에 의해 주어진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그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끊도록 돕는 안락사 또한 명백한 살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낙태도 마찬가지다.
에디는 이태리 가톨릭 운동 단체의 요청에 따라 웰링턴으로 온 후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친해졌다. 그와 매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배우고자 하는, 너무 쉽게 망각해버리는 일상의 가치를 내 옆에서 쉼 없이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에디가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다.
“며칠 전 퇴근 후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허트 강의 둑을 걸어 내려갔어. 강 너머로 낭만적인 저녁노을이 드리웠길래 한동안 멈춰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거든. 그때 한 떼의 오리들이 노을 위로 푸드덕 날아오르며 강둑 저편으로 사라지는 거야. 붉게 물든 저녁노을 위를 나는 한 무리의 오리 떼…. 이~ 야! 그야말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정경이었어.”
그 광경을 재음미하듯 잠시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이 매일같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난 하느님을 믿지 않아’라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다”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4년 후 에디가 로마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뉴질랜드 생활을 정리도 할 겸 머리도 식힐 겸 이태리로 돌아가기 전, 고향인 브라질로 휴가를 떠났다. 그로선 5년 만의 귀향이었다. 아직도 뉴질랜드를 ‘세상 끝자락’이라 부르는 어머니와 운송회사로 기반을 잡은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 것도 잠시,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아들이 고향에 정착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아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을 떠난 이래 20여 년 넘게 온 세상을 돌며 가톨릭 운동 단체에 봉사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 이제 집으로 돌아와 더 늦기 전에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미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늙은 아버지의 한편으론 당연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을 즉석에서 거절할 수가 없어서 에디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노라고 대답했다. 탄탄한 가업을 이어받아 고향에서 안주할 수 있는 기회 이외에도 크고 작은 비즈니스 제안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척들을 통해서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그중에는 브라질 전역에 호텔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거부와의 만남도 있었다. 호텔업 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로 원단 무역업을 하는 그 사업가는 에디의 얘기를 그동안 많이 들어왔다면서 차로 4시간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하여 에디를 만나러 왔다. 그의 어여쁜 조카딸과 함께.
에디가 출국하기 며칠 전, 그 거부는 그동안 호주와 뉴질랜드로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 미뤄왔다며 상당한 조건과 함께 에디에게 오세아니아 지사장직을 제시했다. 게다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이혼 경력이 있는 상당한 미모의 조카딸 역시 에디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상황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훤칠한 키와 세련된 외모의 미남인 데다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웃는 얼굴에 편안함이 배어 나오는 원숙한 장년인 그에게 여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만큼 그는 매력적인 남자다. 그 조카딸 얘기를 할 때마다 에디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정말 예쁘고, 세련되고 매력적인 여자”라며 감탄사를 숨기지 않고 쏟아냈다.
물론 에디는 그 거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가 웃으며 “부와 미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을텐데 그 커다란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겠다”라고 놀렸더니 “유혹이라기보다는 내 삶의 중심이 하느님임에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던 아주 좋은 기회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비즈니스 제안들보다 정작 그를 갈등하게 만들었던 것은 노부의 애절한 바람이었다. 로마로 돌아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자신도 브라질에 남을 생각은 없었지만 늙은 부모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에디는 성당을 찾았다. 매일 하는 미사 참여지만 그날만큼은 하느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에디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그날 미사에서 바로 나왔다. 그날 복음 말씀이 루가복음 14장 25절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날 미사의 복음을 들으며 에디는 전율했다고 털어놓았다. 하느님이 자신의 곁에 계심을 느끼자 새삼 힘이 났다고 했다. 그 복음을 되새기면서 그날 저녁 늙은 아버지를 안으며 에디는 “아버지, 난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그전에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하느님의 아들이듯 저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아들이 될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 주세요.”
언제 또 보게 될는지 모르는 막내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어루만지며 늙은 아버지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그가 털어놓았다. 뉴질랜드로 돌아와 로마로 돌아가기 전 모두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에디는 “기름진 텃밭에 씨앗을 뿌리러 나왔다가 커다란 열매를 수확해가는 돌아가는 행복한 농부가 된 기분이다. 뉴질랜드에서 수확한 아름다운 만남이란 열매는 이태리는 물론 앞으로 내가 가게 될 미지의 나라에서 또 다른 씨앗을 뿌리게 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태리에서 그와의 즐거운 재회를 꿈꿔본다. 그가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들은 지독한 가뭄으로 쩍쩍 갈라져 있던 나 같은 사람의 메마른 마음속에서도 자리 잡아 조금씩 서서히 끈질기고 힘찬 생명의 탄생을 이루어내고 있다. 생명의 텃밭을 일구어 내는 힘은 거창한 표어나 좌중을 일순 휘어잡는 연설, 카리스마가 넘치는 일순간의 정열 따위가 아니다. 매일매일의 반복적인 만남임에도 생전 처음 만나는 듯 반가워하는 밝은 미소, 진정이 담긴 말 한마디, 비난보다는 격려와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관대한 마음, 불편한 사람의 짜증 섞인 불만을 진진하게 들어줄 수 있는 인내,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었다. 그런 씨앗들을 쉼 없이 뿌리면 기름진 텃밭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메마른 대지위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결실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나는 에디로부터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 귀한 열매를 내가 피워 내기엔 난 갈 길이 너무도 멀고 또 멀다. 하지만 에디가 그랬듯 내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의 씨앗을 뿌리려고 애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겸손해진 마음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밝은 미소로,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 목소리로 어제 보다 쪼끔씩 더 나은 오늘을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