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그 두 번째 시작

기차 여행 - 스물

by 강바다

겨울비가 추적거리던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우리의 인생은 기차를 타고 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철길을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 그 안에 우리 모두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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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승객들은 기차 안에서 앞으로 정신없이 뛰고 있다. 칙칙폭폭… 기차가 이미 힘 있게 앞으로 달리고 있는데, 그 안에서 남보다 좀 더 빨리 앞으로 가겠다고 쿵쿵거리며 뛰고 있다. 이들에겐 객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다른 승객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식당차엔 어떤 맛있는 메뉴가 올라와 있는지, 차창밖엔 어떤 풍경들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사라지는지 도무지 관심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뛰는 것이다.

그들이 뛰는 건 기차 앞쪽의 특등석에 앉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기차의 앞쪽으로 뛰는 사람들 중엔 자신들이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덩달아 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웬 사람들이 앞으로 마구 뛰어 나가니까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 뛰어야 하는가 보다” 하면서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멋모르고 뛰는 것이다.
제자리에 느긋이 앉아 있는 승객들도 숫자는 적지만 있다. 이들은 왜 이 기차에 타게 됐는지, 당초 기차표를 끊어준 이가 누구인지, 이번 기차여행 동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차창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비춰본다.

기차는 푸른 벌판을 가로지르고 수려한 계곡과 굽이쳐 흐르는 강을 품에 안는다. 집채만 한 바위도 비껴가고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의 숲을 꿰뚫고 회색 구름 아래를 쉼 없이 달린다. 어떤 때는 세찬 빗방울이 창문을 적시고, 때론 아릿한 미풍에 어떤 때는 심하게 풀쩍이는 센 바람이 기차를 휘감기도 한다.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 암흑에 휩싸이면, 앞으로 뛰는 승객이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나 공포스럽긴 마찬가지다.


'기차 여행의 불문율은 누구나 자신의 정거장에 도착하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승객은 자신들이 내리게 될 정거장이 언제 어디인지를 전혀 모르는 채 여행하고 있다.

이번 정거장부터 50번째 정거장이 될는지, 아니면 바로 다음 정거장이 될는지 모른다. 그런 일이란 게 대개 그렇듯 아무런 예고나 경고도 없이 일어난다. 기차 앞으로 달리는 사람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그런 승객들 중 한 사람이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차장이 정신없이 앞을 향해 뛰고 있는 당신을 갑자기 붙들어 세우곤 “이번이 당신의 종착역이니 내리시오!”하고 무표정하게 말한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것 봐요, 이건 뭔가 잘못됐을 거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오.”
“말도 안 돼. 난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아니면, 차라리 애원일까.
“제발 부탁입니다. 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오. 앞으로 다섯 정거장만 더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 앞으로 저… 정… 말 잘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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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심정을 안다. 총체적인 공포,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비현실감,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이 순식간에 현실로 둔갑해 버린 그 낯섦. 죽음이란 과연 산 사람에겐 암흑과도 같은 낯선 세계의 엄습이 아닌가, 그리고 난 후 쏟아질 듯 무너져 내리는 무기력함…
처음엔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별 수없이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선택 없이 받아들이고, 마지막에 가선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의 여행 중에 놓친 수많은 만남들, 사람들, 기회들 등 많은 것들을 아쉬워할 것이다. 그때까지도 도대체 이 기차여행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분노와 서글픔을 한 아름 안고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겠고, 뒤늦게 그걸 알아차리는 이도 있겠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어차피 너무 늦은 것이다. 나도 그런 무리 중 한 사람이었다. 기차 안에서 앞만 보고 뛰던 사람, 아니 남들이 뛰니까 그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앞만 보고 뛰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내게 차장이 종착역에 이르렀으니 이젠 내릴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 그 역에서 내리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기차 안의 제자리로 되돌아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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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더 이상 이전처럼 무턱대고 앞만 보고 뛰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네 본다. 대화 중에 ‘우리의 인생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는 친구의 말을 전해준다. 이 여행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종착역이 다가왔을 때 준비 없이 맞이하던 그 공포감, 허탈감, 한없이 몰아치는 회한에 대해서도 남김없이 털어놓을 것이다. 여전히 난 다른 승객들처럼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어디쯤이 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종착역에서 내릴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것이다.


기차가 서는 이름 모를 어느 정거장이 나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내가 타고 왔던 기차의 계단을 밟고 내리면서 거대한 기차와 그 안에서 만났던 적지 않은 사람들, 아직도 자신들의 정거장을 기다리며 여행을 계속할 사람들을 찬찬히 돌아볼 것이다. 그들을 한참 돌아보고 난 다음, 내가 모르는 그러나 몹시 궁금해하던 저편의 정거장 너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을 지금부터 늘 준비해 간다. 그때가 되면, 두 팔을 한껏 하늘로 치켜들면서 감히 다음과 같은 혼잣말을 흥얼거리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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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힘들었지만 뿌듯한 여행이었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