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 열넷
웰링턴의 내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왼쪽 창문으로 거리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빗발까지 간간이 흩뿌리면 뜨거운 롱 블랙을 책상 위에 놓고 에바 캐시디나 오스카 피터슨을 듣는다. 글 쓰기엔 안성맞춤인 시간이다. 글을 쓰다가 가끔씩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면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슈퍼마켓 유니폼을 입은 큰 키의 나이젤, 내셔날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조앤 할머니, 단골 미장원에서 일하는 늘씬한 금발 아가씨 니콜 그리고 그들 가운데엔 인도 노인이 있다.
인도인지 파키스탄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서남아시아 계통이다. 껑충한 키에 앙상하게 마른 이 노인은 환갑을 틀림없이 넘겼을 나이에 안경을 썼고 황토색 야구모자에 짙은 보라색 점퍼, 남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때가 까맣게 탄 우윳빛 운동화를 신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옷차림이다. 그가 유난히 자주 눈에 뜨이는 건 걸음걸이가 특이해서다. 긴 다리에도 불구하고 한 뼘도 안 되는 보폭으로 어린아이처럼 아장아장 걷는다. 게다가 양손을 약간 앞으로 내놓아서 멀리서 보면 기다란 로봇이 절뚝거리며 걷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무심코 거리를 걸어가는 그 노인을 볼 때마다 난 고개를 일순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영감, 꼭 저렇게 걸어야 하나? 보기 흉하게 시리…”를 뇌까리면서.
중환자실에서 24시간을 보내고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여전히 온갖 튜브들이 신체 이곳저곳에 꽂혀 있다. 양쪽 코에는 두 개의 플라스틱 튜브가 달렸는데, 하나는 호흡용 다른 하나는 액체 음식물 투입용이다. 오른쪽 목엔 두툼한 지갑 크기의 철제 통이 붙어 있었는데 여러 개의 주삿바늘이 목정맥에 꽂혀 있었다. 수술 후 배속에 남아 있는 피 등 각종 분비물이 빠지도록 양쪽 옆구리 각각에 꽂아 넣은 주황색 호스와 플라스틱 주머니, 소변이 흘러나오도록 요도에 연결해 놓은 고무호스와 오줌 받이 통, 그 외에 오른쪽과 왼쪽 손목에 찔러놓은 주사들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꼼짝 못 하긴 처음이다.
진통제에 취해 낮에는 비몽사몽인 채 헤매고, 정작 잠을 자야 하는 밤엔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잠깐씩 잠이 들면 체온, 혈압, 혈당, 맥박을 재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주사를 놓기 위해 수시로 드나드는 간호사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어 보라. ‘세상 편하겠다’ 싶겠지만 그렇게 1주일만 있어보면 아마도 가장 끔찍한 고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루 종일 큰 대(大) 자로 천장만 바라보고 누운 채 엉덩이를 2cm쯤 조심스레 돌려 보거나 몸의 중심을 왼쪽 어깨 또는 오른쪽 엉덩이로 옮겨주는 것이 최대한의 몸부림인 상태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땐 마음껏 옆으로 또는 엎어져 누워 잘 수 있는 사람, 다리 하나를 배에 바싹 붙여 오그린 채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마음 내키는 대로 5분마다 자세를 바꿔서 누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수술 후 둘째 날 콧구멍에 꽂은 플라스틱 튜브를 빼내니 살 것 같았다. 셋째 날은 목에 붙은 주사 통. 이런 식으로 몸에 연결된 튜브들로부터 하나둘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요도에 연결된 고무호스를 뽑아낸 날은 반쯤 기절했다 깨났다.
넷째 날엔 수술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병원에선 수술 다음날 샤워를 하도록 권했지만)
팔뚝에 연결된 주사 병을 매달고, 양쪽 옆구리엔 피주머니를 꿰차고 하는 아침 샤워다. 번거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오래 서있을 힘이 없었다. 기껏해야 3분 정도 벽을 짚고 서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몸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핏자국과 말라붙은 각종 분비물을 닦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 누우면 금방 피주머니가 샜다. 새벽 3시쯤이면 배에서 나온 분비물로 등 뒤와 배 양쪽이 질펀했다. 새 것으로 갈아 끼워도 금세 몸과 침대 시트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몸을 쉽게 움직일 수도 없으니 그 찐득찐득하고 뻘건 분비물 범벅 속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낮에는 수술 한 지 1주일도 채 안된 나를 물리치료사가 데리고 나와 병실 복도를 걷게 한다.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는 얘기였다. 억지로 하루에 두 번씩 병원 복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어느 날 저녁, 짧은 숨을 학학거리며 발걸음을 겨우겨우 옮기다 보니 병원 복도의 맨 끝 벽에 붙은 거울 위에 내 모습이 조그맣게 비쳤다. 그 거울을 목표로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겨우겨우 나갈 때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조금씩 커져갔다. 환자복에 싸인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었다. 멀리서 본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웬일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거울을 향해 나름대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다가갔다. 복도의 절반쯤 지났을 때 그것이 왜 그렇게 눈에 익은 것인지 곧 알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그 인도 노인의 바로 그것이었다.
갓난아이가 아장아장 걷듯이 작은 보폭으로, 팔에 걸린 주사 통 때문에 양손을 약간 앞으로 내민 채 절름거리면서 느리게 걷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 말이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절뚝거리는 로봇의 모습으로 천천히 거울을 향해 다가가는 나를 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난 그 인도 노인도 결코 그렇게 흉하게 걷고 싶지 않았다는 걸, 그도 나처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걸어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완전하게 걷는 흉한 그의 모습을 외면하기만 했지, 그가 왜 그렇게 걸어야 했는지 이해하거나 관심 조차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선 난 언제나 오래전부터 자신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다. 언제나 그랬었다.
내면적인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수술 직후이긴 했지만,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고 보니 ‘건강을 잃어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말이 뼈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적인 것들, 반복적이어서 무의미하고 지루하게까지 느껴졌던 사소한 일과들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다.
모닝커피가 생각나면 사무실 의자를 박차고 나가 길 건너 카페에서 계핏가루를 듬뿍 뿌린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들에게 10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것, 아니 그것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이 늘어져라 기지개를 한 번 쫘악 켜는 것부터 매일의 평범한 ‘아침 의식'을 감사하게 되었다.
잠에서 깨면 반쯤 감긴 눈으로 어렴풋이 동이 트고 있는 창밖을 내다본 다음 욕실로 향한다. 샤워 물을 틀고 뜨거운 물을 등으로 맞으며 사과향 나는 샴푸로 머리를 박박 문질러대고 허리를 한껏 구부려 발가락 하나까지 닦으며 마음껏 샤워를 한다. 샤워 박스를 나와선 거울을 보며 칫솔질을 하고, 얼굴을 촉촉이 적신 다음 요리조리 얼굴을 돌려가며 말끔하게 면도를 한다. 머리 물기를 털어낸 후 애프터 쉐이브를 뿌리고 로션을 바른다. 가운을 걸치고 나와 옷장을 연다. 어젯밤 생각해 놓은 양복을 꺼내고 양말도 바지색에 맞춰 고른다. 구두는 잘 닦여 있는지 점검한다. 옷을 차려 입고 시계는 왼쪽 손목에, 반지는 양손 넷째 손가락에 각각 낀 다음 알마니 향수를 살짝 뿌리는 것이다.
피주머니를 꿰차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한 손을 벽에 짚고 하던 샤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어깨를 한 번에 2cm 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던 병원 침대에서의 24시간 생활에 비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황제나 다름없는 오늘이 그저 눈물 나게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그 어떤 무엇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자리엔 아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코끝을 간지러우는 익숙한 아내의 냄새를 맡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사랑해’라는 아침인사를 속삭일 수 있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된 것이다. 과거엔 당연하게 지나쳤던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이런 것들에 감사하게 된 것이 수술 후, 그러니까 두 번째 인생이 주어진 후 내게 일어난 첫 번째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