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 셋
승객들은 달리는 기차의 맨 앞 일등석에 앉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등 칸의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그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바로 앞의 특등 칸으로 옮기기 위해 또다시 뛰기 시작한다. 기차의 앞쪽에 앉을수록 그 승객의 삶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인정받는다. 기차 앞쪽에 앉을 수 있는 선택된 승객이 되기 위해 나머지 승객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 가족, 일상의 즐거움을 희생하면서 ‘기차 안에서의 달리기’에 전력투구한다.
그러나 승객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누구나 다 달리는 것에 애쓰는 것은 아니다. 일부 승객들은 기차 안의 달리기가 신물 나도록 지겨워졌고 재미도 사라졌으며 굳이 미래를 온통 걸만한 대단한 가치나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더 이상 달리는 승객이 되기를 거부하는, 방향타를 잃어버린 듯 보이는 이들에겐 ‘낙오자’란 딱지가 붙여지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이들도 많다. 갑자기 1년 예정으로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시골로 내려가 은둔하는 경우도 있고, 훌쩍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버리는 이들도 생긴다.
대다수의 다른 이들처럼 선택 없이 달려야 하는 승객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난 주말 없이 매일 10시간 넘게 일하고 월요일 하루를 쉬었다. 그 쉬는 날엔 짧은 죽음처럼 하루 종일 긴 잠 속으로 나 자신을 떠밀었다. 물 적신 솜처럼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일으키고 나면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차 안에서 달리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선택이 있지 않을까?' 자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차 바깥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풍경과 모험이 펼쳐지고 있을까?'
물끄러미 허공에 시선을 던져두곤 했다.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자유를 그리고 해방을 꿈꾸면서.
그 꿈에 의지하면서 반복적인 달리기를 견디어갔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달리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굳어지자, 계속 남들과 함께 앞 다투어 빠르게 달리는 대신 자리에 앉아 땀을 식혔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나의 기차 칸을, 앞 뒤 칸을, 그리고 기차를 바라보았다. 내가 달려왔고 앞으로 달리려고 하는 기차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스쳐가는 각종 풍경을 가슴에 담는 여유를 찾아내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노력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의심이 사라지자 결단을 내렸다.
4년 동안 다니던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었다.
바로 미련 없이 뉴질랜드 이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