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만들기

기차 여행 - 넷

by 강바다

왜 뉴질랜드로 떠나왔는지 설명하자면 ‘고향’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뉴질랜드 동부 네이피어 부근에 위치한 과수원 <사진=강바다>

난 누가 고향에 대해 물어보면 도대체 무슨 얘깃거리가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왜 추석이나 구정이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리는 고속도로를 엉금엉금 기듯이 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가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동구 밖에서 잣치기를 하거나 수박서리를 하면서 놀던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고, 동네 건너 개울가에서 발가숭이로 뛰어들어 잡은 올챙이로 라면을 끓여먹는 재미는 더더욱 모른다. 고향 친구들도 없고, 고향이란 뉘앙스가 전해 주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따스하고 정겨운 느낌도 모른다. 내가 태어난 곳 서울은 그저 사람 많고 복잡하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대도시일 뿐이다. 그러다가 난생처음 서울을 떠나 전혀 낯설고 생경한 곳에서 생활할 기회가 주어졌다.


미국 오리건주의 소도시 유진.
오리건 대학이 위치한, 도시라고 부르기엔 왠지 낯간지러운 인구 10만의 자그마한 캠퍼스 타운이다. 대학교 덕분에 젊음의 생기가 넘치면서 은퇴한 노인들이 몰려 사는 한갓지고 조용한 곳이다. 오리건은 미 50개 주 중에서 환경 보호에 유난히 민감해 이런저런 개발이 부진하고, 그래서 타 주에 비하여 경제적으론 부유하지 못한 주다. 하지만 바로 아래의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부러워할 만큼 나무가 우거지고 사철 내내 푸른 잔디가 펼쳐진 자연주의자들의 보금자리다.

<사진=강바다>

신혼을 그곳에서 시작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부부 기숙사 단지 내에서 살았는데, 방 두 칸짜리 작은 연립주택의 한 달 임대료가 당시 무척 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이면 침실 창문 옆의 나무 위에서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유진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쪽 산기슭엔 별장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그 지역에 사는 지도 교수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낸 아는 선배는 이른 새벽 앞마당으로 나가 보니 울타리 사이로 야생 사슴이 고개를 내밀고 빤히 쳐다봐 잠 덜 깬 아이들이 법석을 떨었다는 얘기를 상기된 표정으로 들려주었다.
오리건엔 이름난 관광 명승지는 없지만 가볍게 바람 쐬러 다닐 공원, 해변들,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과 숲들이 무궁무진하다. 주말에 간단한 샌드위치를 싸서 한두 시간 달리고 나면, 아내와 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이름 모를 숲 속의 언덕 위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곤 했다. 장차 태어날 아이들 얘기, 미래에 대한 계획, 보고 싶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초봄 누른 들판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가을 숲의 은은한 평화, 여름 호수의 단아한 고요, 겨울 눈꽃 밭의 얼음장 같은 투명함도 자연의 때 묻지 않은 신비 속에 한 겹 두 겹 조심스레 끼워 넣으며 우리만이 공유하는 기억의 창고 속에 차곡차곡 담아 넣곤 했다.

<사진=강바다>

서부 해안가 마을 플로렌스도 잊을 수 없다. 주말 드라이브 코스로 자주 들렀던 곳인데 태평양에서 불러오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모래사장 위를 한참 걷다가 해변가 노천카페의 에스프레소 향에 흠뻑 취해 돌아오곤 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 하기 6개월 전 아내가 임신을 했다. 배가 불러온 아내와 함께 가까운 아마존 공원을 매일 함께 산책하는 것이 논문 쓰는 것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아내는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마시겠다고 금붕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곤 했고, 그 흉내를 내면 아내는 영락없이 입을 삐쭉댔다.

일요일이면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보고 슈퍼마켓에 들러 한 주간의 장을 보는 것도 정해진 순서였다. 떠나 오기 직전 마지막 일요일엔 성당의 마크 신부님을 멀리서 보였다. 누런 식료품 봉지를 자전거 뒤에 묶고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사라지는 젊은 미국 신부님의 뒷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여태껏 가슴에 애잔하게 남아있다.

<사진=강바다>

그 정겨운 이미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되살아나 메마른 내 마음을 달래듯 어루만지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하는데, 당시엔 그것이 좋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왜 좋은지 생각해 보질 않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외국 생활에서 오는 설렘과 흥분,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험이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새로 와서 그랬을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진 못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을 즐기며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의 빈 공간은 언제나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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