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첫 번째 조건

기차 여행 - 다섯

by 강바다

내가 일상을 영위하는 이유이자 목적은 항상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이 말은 내가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란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정반대였을 것이다. 당시 내가 누리고자 정의 내린 ‘행복한 삶’은 ‘힘과 부를 가진 강자의 삶’이었다. 가진 자 힘센 자들에게 굽신거리고 사탕발림이나 해야 하는 무수한 다수 중 하나로서 살기에 생이란 너무 짧고 안타까운 것이란 성급함도 있었고, 한 번 세상에 던져져 나왔으니 뛰어난 자의 들러리에 불과한 변두리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어차피 내 인생이란 무대의 주연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시 나를, 그리고 나만을 섬겼다. 철저하게 나만을 위해서 살고자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누리기 위해서 나만 잘 되고 나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지, 나 이외의 다른 개인이 어떻고는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이웃과의 관계, 종교의 참뜻, 불평등, 이데올로기, 체제나 시스템, 기회균등의 결여, 사회 정의의 실종 따위 등등 가끔씩 폼 잡을 때나 주절대는 지적인 자위수단일 뿐이었다.

길고 흰 구름의 섬, 아오테아 로아 뉴질랜드 <사진=강바다>

강자가 되기 위한 최우선적 필요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돈이었다. ‘돈으로 행복을 사지 못한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정말 웃기는 소리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떠벌리고 다녔다. 돈 많은 부자가 가난뱅이 보다 훨씬 행복한 것은 아닐지라도, 가난뱅이들 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힘을 가진 뒤 돈이 따라붙건, 돈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권력을 탐하건 그 순서야 어찌 되건 돈은 행복을 누리는 제1의 필수 요소였다.
한치의 의심도 갖지 않았고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자연스레 그걸 취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돈을 쥐면 사회적 지위=명예=권력 다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라는 알량한 지위로 내 딴에는 즐긴다며 물신을 품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쉽지도 않았거니와 5년, 10년 뒤의 내 모습이 손바닥 눈금 새겨보듯 빤히 그려졌다. 돈도 일상의 갈증을 채워주는 오아시스는 아닌 듯싶었다. 그저 그럴 듯 보이는 신기루에 불과했다.

그런 생각에 하루하루 나도 모르게 지쳐 버릴 무렵, 무작정 달리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다보았다.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잃어버린 지친 모습의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리고 서 있다. 그 어리석음에 조소와 분노, 동정심을 뒤섞여 쏟아냈다.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밖으로 눈을 돌렸다. 서부 개척민처럼 포장마차에 가재도구 몇 개를 싣고 무작정 신천지를 찾아 떠나듯 선뜻 탈출을 감행했다.

창 너머의 신세계는 언제나 감미롭게 보인다. <사진=강바다>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던질 만큼 젊었고 또한 무모했다. 그렇게 모험가가 되어 뉴질랜드로 선뜻 이민을 떠나왔다. 도대체 자동차 운전석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모르고 올 만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덤볐다. 그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묵은 것 익숙한 것들을 털어버리고 떠난 기세 등등한 탈출이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선명하게 손에 잡혔다. 그건 가족과 함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질’이었다. 그건 탈출 전까지 내가 쥐고자 했던 목표 - 사회적 성공 또는 출세와는 전혀 다른 반대 편에 놓여 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누리면 좋으련만.

미래에 대한 희망에 벅차 올라 무슨 일을 하던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닥치는 대로 다가온 기회를 부여잡으려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취업이 어렵다는 뉴질랜드에 도착한 후 불과 2개월 만에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민까지 와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무렵, 여행사를 해보자는 제의 받아들여 낯선 여행업계에 맨손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에 관광 가이드, 유학원을 거치다가 무역업에 손을 대면서 기왕이면 내 브랜드를 키워보자며 스포츠웨어 브랜드를 출시했다.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생각했기에 앞만 보고 뛰었다. 어쩌면 또다시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나를 발견하는 것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돈’이나 ‘출세’ 따위가 아닌 ‘양질의 일상’을 움켜쥐고 즐기고자 숨 가쁘게 달렸다. 그러나 모든 상황과 여건, 환경, 운과 기회 등 각종 변수를 단박에 압도하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조건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건 생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전력투구하기에 앞서 훨씬 더 우선시됐어야 하는 필요조건이었다.

바로 건강한 신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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