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 둘
나의 친구 로버트는 11남매 중 7번째다.
70이 훨씬 넘은 그의 부모는 웰링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촌마을 프리머튼 (Plimmerton)에 산다. 가끔씩 우리 가족과 로버트네 가족은 바람마저 잠든 고요한 여름밤이면, 게를 잡으러 한적한 바닷가 모퉁이에 자리 잡은 그의 부모 오스틴과 마가렛의 집에 놀러 가곤 했다. 평생 어부로 살아온 오스틴의 해안가 집에는 바다 게를 잡는데 필요한 어망부터 미끼, 작은 보트까지 없는 게 없다. 생선 머리를 망 위에 얹혀놓고 보트를 저어 바다로 나간다. 그리 깊지 않은 바다에 망을 대여섯 개쯤 여기저기 던져놓으면 그다음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본다. 밤 10시가 넘은 고요한 밤바다 위에 앉아 수천수만의 은빛 깨들을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겸허함을 배울 수밖에 없다.
1시간쯤 지난 후 망을 풀어놓은 곳으로 보트를 저어 하나 둘 끌어올려 보면 바다 밑바닥에서 기어 다니다 망 속의 생선을 뜯고 있는 게들이 낚여 올라온다. 작은 동아리만 한 망에 열 마리가 넘는 게들이 엉겨 있을 때도 있다.
우선은 새끼 게들을 가려낸다. 게의 크기를 재는 자가 있다. 한 뼘이 못 되는 자를 넘지 못하는 새끼 게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고, 충분히 자란 게들을 잡아가는 것이다. 프리 머튼 앞의 작은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두 시간여의 여름밤 의식이 끝나고 나면 며칠간은 게 파티가 벌어진다. 가까운 이웃들에 잡은 게들을 나누어주고, 우리는 게장을 담가 먹기도 하고 게 찌개를 끓여 며칠 낮밤을 질리도록 먹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로버트와 로버트의 식구들은 게를 먹지 않는다. 게 낚시를 핑계로 늙은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 좋은 구실이 되고, 친구 가족이 좋아하는 게 잡는 걸 도와주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그 로버트 바로 위의 형인 마이클이 갑자기 일터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41세였다.
평소 건강하고 서핑이 취미였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은 물론 그를 아는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300명이 넘는 조객들이 성당을 가득 채운 마이클의 장례식에서 로버트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한 출장지의 한 모텔에서 쓴 시를 낭송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로버트의 아버지 오스틴은 장례식이 끝난 후 20여 명이 넘는 손자 손녀들을 한 자리에 불러 앉혀 놓고 “우리의 삶이란 이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례식 직후, 로버트의 또 다른 형은 “평생 그렇게 타고 싶어 했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사서 해안도로를 하루 종일 마음껏 달렸다”라고 로버트가 말해주었다. 후회 없는 삶, 아쉬움이 남지 않은 생을 살기 위한 순간의 노력일 것이다.
생기발랄한 생명의 공간으로부터 미지의 죽음으로 건너가는 시기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적지 않게 얼룩지게 한 탐욕, 이기심, 자만, 거짓의 실체를 똑바로 보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스스로 내버리고 더러운 행위와 못된 욕심에 몸을 던진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때이다. 왜냐하면 종착역 도착 직후의 첫 번째 사건은 심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싫으나 좋으나 오래 살았거나 짧게 마쳤거나, 때가 되면 장사꾼이 가게문을 내리고 그날의 셈을 가리듯 우리 모두는 방금 끝마친 삶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 보고가 끝나면 심판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관대한 심판을 갈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