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법

정거장 열여섯 - 행복이라는 객차

by 강바다

“순간의 사랑을 영원한 기억으로 바꾸는 방법을 아십니까?”

무대에선 배우가 관객들을 향해 던지는 독백처럼 표회장의 탄식이 허공으로 흩뿌렸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너무 행복한 순간들이어서 아직 오지 않은 내 인생의 전부와 기꺼이 맞바꿀 만큼 영원히 지속되길 바랬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지나가는 행복의 순간들을 꽉 붙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만큼 행복한 아픔의 시간이기도 했고요.”

장거리 기차여행 끝에 도착한 바라나시는 리시케시와는 전혀 달랐다.
생과 사가 극명하게 공존하는 묘한 곳이었다. 당초 1-2주 정도 머물다 남인도 첸나이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떠나기로 한 날 기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며칠 더 머물렀다 그다음 번엔 전날 밤 마신 술에 둘 다 만취해 기차를 놓쳤다. 세 번째는 지린내가 물씬 나는 기차역 안에 우두커니 앉아 기차를 기다리다 ‘바라나시처럼 매력적인 곳이 인도에 과연 또 있을까?’라는 케이시의 읊조림에 우리는 잠시 얼굴을 마주 보다가 기분 좋게 기차표를 찢었다. 그리곤 늦은 오후 손을 꼭 잡고 일몰을 보러 갔다. 3개월을 더 머물렀다. 케이시는 애초부터 바라나시를 인도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로 생각해둔 듯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새벽 일출을 바라보고 낮에 화장터에 앉았다가 낮잠을 자기도 하고 서늘해진 오후엔 보트를 타고 강가를 유람했다. 강 저편으로 건너가 보기도 했다. 우리의 단골 뱃사공은 찬드라 ‘찰리’다. 처음에 우린 찬드라가 나이 지긋한 40대 중년 사내로 봤는데 알고 보니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아버지여서 놀랐다. 찬드라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을 15년 넘게 상대한 탓인지도 영어도 능숙하고 무엇보다 넉살이 좋았다. 처음 ‘인도의 영혼’이란 페인트칠이 거의 다 벗겨진 그러나 거창한 이름의 그의 보트에 오른 우리에게 자기의 천사들이라며 세 딸의 사진을 보여줬다. 한 살 배기부터 네 살, 일곱 살짜리인 딸들을 어찌나 자랑하는지 케이시가 ‘찰리의 천사들’에서 따온 찰리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배에 오르면 찰리는 “오. 오늘의 귀중한 손님, 찰리의 아름다운 친구, 케이시와 수”라고 다른 승객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찰리의 배엔 보통은 7~8명 정도 타는데 승객이 많으면 한 번에 20명도 넘게 태웠다. '정원초과 무면허 보트사고, 승객 전원 갠지스 강에서 익사’라는 9시 뉴스가 이렇게 터지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난 안절부절못하였다. 거의 하루 걸러 보트를 타는 우리가 “이거 사람들 너무 많이 태우는 거 아니냐? 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으면 그는 항상 노래 부르듯 이렇게 말하곤 했다.

“노 프러브럼, 마이 프렌드, 노 프러브럼!”

찰리는 바라나시에서 네 번째 천사를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작은 식당도 운영한다. 다른 인도 이름이 있었지만 그곳을 그냥 우리 멋대로 ‘찰리스 키친’이라고 불렀다. 그곳에도 자주 들렀다. 매일 들르고 싶었지만 식당은 매일 여는 것이 아니었다. 찰리의 기분대로 열고 싶으면 열어서 우리도 허탕 치기가 일쑤였다. 아예 보트를 탈 때마다 오늘 너희 식당에서 밥 먹을 거라고 미리 예약했다. 그러면 찰리는 예약하는 우리에게 “뭐 특별히 먹고 싶느냐”며 진지하게 주문을 받았다. 그런 날에도 식당 문은 여지없이 잠겨 있었다. 약속을 펑크내고서도 (주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는 항상 웃고 있었고 당당했다. 내가 가볍게 불만이라도 토로하면 그는 하나도 미안스러워하지 않은 표정으로 천연덕스레 노래 부르듯 말했다.

“노 프러브럼, 마이프렌드, 노 프러브럼!”
저녁 예약과 식사 주문까지 하고도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손해 본 사람은 우린데 왜 자기가 노 프러브럼을 외쳐대는지 의아했다. 혹시 노 프러브럼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란 의심마저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와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매사에 그런 식인 찰리에게서 달관을 보았다.

그것은‘넌 뭐가 그렇게 맨날 초초해? 왜 이렇게 서둘러? 가트에서 매일 죽는 사람들 못 봤어. 밥 한 끼 먹는 게 무슨 대수라고. 느긋하자고, 오늘 못 먹으면 내일 먹으면 되고. 그러다가 못 먹으면 그것으로 그 나름대로 좋은 거야’라는 질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것은 체념이 아닌 달관이었다.


저녁엔 케이시와 함께 일몰을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우린 모든 것을 함께 했다. 그래서 특별했다.

“바라나시를 힌두교의 성지라고 하죠. 수는 윤회를 믿어요?”

“난 그런 걸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워낙 사느라고 바빠서.”

“푸후 훗. 사느라고 바쁜데 왜 사는지는 모른다는 얘기처럼 들려요?”

“윤회라는 단어 자체가 먼 나라 얘기로 느껴져서.”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어서 내가 얼버무렸다.

“우리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 일상의 끝이 무엇일까. 그다음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그 이후에 대해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려놓으면 현재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건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일상의 종말은 당연히 죽음이고 죽으면 어찌 될까를 미리부터 두려워하고 걱정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케이시가 그 예의 배시시 한 웃음을 살포시 터뜨렸다.

“수는 죽음이 두려워요?”

“미지의 세계니까 당연한 두려움이 있지. 죽음은 말 그대로 생의 끝이니 살아 있을 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죠?”

푸른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내 대답을 진지하게 기다리는 케이시를 쳐다보면서 당혹감이 밀려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가 말했다.

“다른 이들처럼 내가 원하는 건 행복이야.”

“그래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나요? 그게 뭐죠?”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던가요?”

“………”

“행복한 경험을 되짚어보면 답이 나올 텐데.”

케이시답지 않게 계속 강하게 밀어붙였다.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요?”
해야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언제 행복한가요?”
“마음이 평화로울 때.”

내가 가까스로 만회했다.

그렇다. 그걸 찾아서 머리를 식혀 보자고 떠나 온 인도 여행이 아니었던가.

“그럼 언제 마음이 평화롭죠?”

그 물음에 미소가 번졌다. 정답이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난 평화란 달콤한 와인에 흠뻑 취해 버리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그래서 미치도록 행복해.”
“아니, 5분씩이나 걸린단 말이에요? 난 5초면 돼요.”
방금 전까지 진지하던 케이시의 표정이 누그러지면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도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행복해요. 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사랑해. 케이시”

“몰랐어요, 수? 내가 조금 더 많이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열어 보였다. 3년 굶주린 비렁뱅이가 10인용 식탁 위에 산더미같이 쌓인 산해진미를 하나씩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면서 나중엔 부스러진 빵조각 마저 남김없이 먹어치울 요량으로 서로의 모든 것을 심지어 머릿속의 생각까지 열정적으로 탐닉했다.

하루가 시위 떠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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