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윤회

정거장 열일곱 - 신호등

by 강바다

하루의 시작은 일출을 보는 것이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강가에 앉아 해뜨기를 기다렸다. 어둔 새벽부터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고 명상하고 기도하며 심지어는 그 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해도 뜨지 않았는데 참 열심히네.”

어깨에 기댄 케이시의 머리카락을 연신 어루만지며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는 투로 내가 말했다.

“당신이 얘기해 준 그 ‘신의 전설’처럼 갠지스에서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죄를 모두 씻어 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건 살아 있는 사람에 해당하긴 얘기고, 죽은 사람에겐 여기 갠지스에서 죽고 자신의 육신을 태운 재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지긋지긋한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할 수 있다고 해요.”

“지긋지긋한 윤회라.”

“처음부터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 지긋지긋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의 삶이 과거에 살았던 수많은 것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저 다른 시대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건가?”

“그걸 안다면 지긋지긋하겠네.”

“산다는 게 고된 거죠.”

“생이 반복된다는 걸 어떻게 알지?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제 막 한 번의 생을 마치고 떠나는 저 영혼들에게 물어볼까요?”
케이시가 가트를 가리켰다. 가트라고 불리는 강변가의 목욕터는 강물에 닿은 긴 돌계단이다. 이 돌계단에서 전통 향나무 위에 망자의 시신을 올려놓고 태운다. 밤새 타고 난 서너 개의 불꽃들이 아직도 어둠에 묻혀 있는 계단 이곳저곳에서 남은 육신을 태우고 있다. 화장터 주변에는 가트에서 화장되기 위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들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서러워 울부짖을 만큼 극명하게 갈린다.

“장작들을 저기 큰 저울에 달아 팔아요. 가난한 사람은 그 장작 값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기는데 팔찌, 머리핀 따위예요. 장작이 모자란 경우도 흔하대요. 지난번에 왔을 때 다 태우지 못한 시체들이 덩어리째 강가로 던져지더라고요. 운이 없으면 가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개들이 가트 주변을 항상 맴도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후세계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케이시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더니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볼래요?”
“물론이지.”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응답했다.

“죽은 사람들이 다음 세계로 떠나기 전 지상과 천상 사이의 임시 대기실에서 머물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풍자 영화예요. ‘당신 인생을 변호하기’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임시 대기실이라. 연옥이란 얘기군.”

“연옥?”

“로만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치거든. 그 심판에 따라 깨끗하고 정의로운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못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지.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역이 바로 연옥이야. 가벼운 죄를 지었다고 심판받은 영혼은 그 연옥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불로 단련을 받아야 하지. 그때 받는 고통과 정화 과정은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달라 지기 때문에 연옥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가 될는지는 영혼마다 다르게 되지.”

“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수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영화의 설정과 굉장히 비슷한데요. 감독이 가톨릭 신자였나 봐요.”

“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셔서 어릴 때마다 성당을 다녔어. 일요 성경학교 뭐 그런 거. 나도 신을 믿지 않아. 성당을 가본 적도 오래됐고.”

어머니를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미안. 내가 딴 소리를 하느라.. 얘기 계속해요, 케이시.”

“괜찮아요. 영화에선 사고로 사망한 주인공이 천상의 시민이 되기 전 ‘심판의 도시’, 즉 연옥에서 머물며 자신의 삶을 변호할 기회를 기다려요. 심판은 법정에서 가려지는데, 증거 자료로는 그 사람의 일생을 전부 담은 디스크가 올라오게 되죠.”

“재미있는 은유인데. 인생의 심판이 법정에서 가려진다. 법정이라면 검사와 변호사도 있겠는데?”

“그렇죠. 법정 한편에는 그 디스크 속에 담긴 주인공의 온갖 일상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면서 그의 생이 실패라고 추궁하는 검사가 있고, 반대편에선 그의 삶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서로 공방전을 벌이는 거예요.”

“희화적이군.”

“재미있지 않아요. 무겁고 복잡한 소재를 가벼운 코미디로 풀어내면서 정곡을 꿰뚫잖아요.”

“그 심판 뒤엔 어떻게 되는데?”

조바심 내며 케이시를 채근했다.

“이런저런 스토리는 희미하지만,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에요. 심판이 내려진 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들이 정거장에 쭉 늘어서 있는 거예요. 목적지는 버스 노선마다 다르지만.”

“와하하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노선이 다른 버스를 탄다. 천재적인 발상인데.”
“그렇죠? ‘심판의 도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탄 버스의 목적지가 어디인 줄 알아요?”

“지옥?”

“아니오. 다름 아닌 지상이었어요. 지옥행 버스는 따로 없었고, 죄인들은 지상으로 환생해 다시 내려오는 거예요. 주어진 생을 제대로 살 때까지 계속해서 지상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거죠. 제대로 살 때까지 몇 번 몇십 번이든.”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케이시가 내 반응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지켜봤다. 그녀를 마주 보며 느낀 바를 솔직히 얘기했다.

“우선 그 영화를 쓴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네. 사후생이란 무겁고 진지한 문제의 본질을 담아 희극적으로 단순화시킬 정도라면 그는 이미 생과 죽음의 의미, 사후 세계에 대해 상당한 내공을 쌓은 사람임에 틀림없어. 대단해. 연옥의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영혼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설정, 케이시의 말 대로 주어진 생을 제대로 살 때까지 계속에서 지상에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메시지. 바로 윤회 사상의 기본 틀이 아닌가.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데.”

부르르 떠는 시늉까지 하자, 케이시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긋지긋한 윤회가 비로소 이해되는가 봐요, 수.”

“윤회도 윤회지만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게 부끄러워. 당신 말대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삶을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상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까.”

“우리 함께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해요.”

열 살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케이시는 언제나 사려 깊다. 자신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의견에 항상 동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할 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그 표현 방법이 논리 정연하면서 과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둘지 않고 인내할 줄 안다는 것이다. 누이처럼 편했고, 때론 어머니처럼 따뜻했다. 그녀의 원만한 성격이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언어, 문화나 습관의 차이, 적잖은 나이 차를 자연스럽게 메꾸어주었다.

케이시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몰이 드리우기 시작한 갠지스 강가를 걸었다. 차분히 가라앉았던 마음 한 구석편에서 작은 흥분감이 천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제 인도에 온 이유를 되짚어 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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