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의 순간을 준비하다

정거장 스물 하나 - 여행의 동반자

by 강바다

하루 종일 애꿎은 찰리만 닦달했다. 처음엔 저녁 식사 예약을 거듭 확인했다가 영 못 미더워 아예 식당의 열쇠를 넘겨받았다. 메뉴를 정해 준 후 오늘 저녁만은 다른 손님 아무도 받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찰리는 아침부터 온종일 “노 프러브럼, 마이 프렌드, 노 프러브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찰리, 저녁 식사의 메인은 말라이 코프타로 해줘. 말라이 코프타, 노 프러브럼?”

“말라이 코프타, 노 프러브럼, 마이 프렌드, 노 프러브럼!”

준비물을 모두 확인했다. 초 31개, 음료는 어렵게 귀한 피노 그리 한 병, 전채식은 마살라 파파드, 메인은 말라이 코프타, 후식은 망고 멜바로 했다. 내 아이포드에 담겨 있는 윈튼 마샬리스의 재즈 스탠더드 볼륨 시리즈 넘버 2와 넘버 4의 전 트랙을 플레이 리스트로 세팅해 아이포드 과 연결했다. 결정적인 큐는 후식을 마친 후 내가 왼 손으로 뒷머리를 세 번 쓰다듬은 후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정했다.

찰리와 준비하는 내내 ‘노 프러브럼’ 소리를 백 번도 더 들은 것 같다. 우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빈틈없는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 길 없는 케이시는 늦은 아침 짜이를 한 잔 마신 후 강가로 산책을 나가더니 오후 늦게야 돌아왔다. 피곤은 풀린 듯 보였으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얼굴 위에 짙게 배어 있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그녀에 드리워진 검은 그늘을 확 걷어내고 화창한 아침 햇살 같은 밝은 미소를 되찾게 해 줄 것이다.
조바심이 났다. 오늘 같은 만찬을 위해 아껴두었던 셔츠와 바지, 구두를 신었다. 케이시도 엷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잘 어울렸다. 내 가슴이 터져버릴 만큼 아름다운 그녀가 생의 동반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으로 숨이 막혀 버릴 것 같다.

저녁 7시, 케이시와 함께 찰리스 키친에 들어섰다.

“오, 맙소사~~!”

케이시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찰리스 키친은 겨우 테이블 세 개가 놓인 작은 공간이다. 준비된 테이블 위에 한 개의 초,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 벽을 따라 30개의 초가 마주 보고 타고 있다. 작고 어두침침했던 실내는 수 십 개의 촛불이 뿜어내는 주황색 열꽃들로 아늑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촛불에 반사된 우리 두 사람의 실루엣이 벽면 위로 어른거렸다. 그 위로 윈튼 마샬리스의 은은한 트럼펫 연주가 서서히 흐르기 시작한다. 촛불에 반사된 탓인지 케이시의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오른 듯 보였다.

찰리가 다가와 준비된 와인을 조심스럽게 우리 두 사람 잔에 따라 주었다.

“케이시, 당신과 나를 위해서!”

내가 잔을 들어 올리며 건배했다.

“치어스, 수.”

‘쨍’ 하고 잔을 마주치자, 실로 오랜만에 보는 케이시의 엷은 미소가 그녀의 얼굴 위로 번져 나갔다. 지금 흐르고 있는 마샬리스의 ‘안고 싶은 그대’를 처음 듣고 재즈에 빠져들었던 때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조지 거쉰과 오스카 피터슨, 40년대 아메리칸 흑백 영화, 우디 알렌의 뉴욕 등 나의 외로웠던 30대에 많은 위안을 주었던 음악과 영화로 화제가 옮겨가며 잔뜩 긴장했던 심신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디 알렌의 천재성은 인생이니 죽음, 사랑이란 추상적인 개념들을 거리 위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의 현실적인 문제로 끌어내려 보여줬다는 것이지.”

“그는 변태예요.”

그녀가 웃으며 짧게 내뱉는다.

“인정해. 변태가 아닌 소위 정상적인 예술가가 과연 있을까?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했지 ‘음악은 그 스스로 말한다’고. 미술, 음악, 무용, 공연의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는 규칙 따윈 없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은 하나의 그림을 보며 자신의 유년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가 있고, 다른 사람은 똑같은 그림을 보고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애절함, 또 어떤 사람은 엉뚱하게도 오래전 군대에서 느꼈던 폭력 사건도 연상될 수 있겠지. 우린 끊임없이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강요받거든. 그런 습관적이고 정형화된 규격을 파괴하는 뮤지션이나 영화 작가들에겐 체제의 순응자 보다 때론 변태나 정신이상자란 딱지가 붙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거야.”

“궤변이에요, 수.”

“궤변이래도 좋아. 난 이런 창작품들을 통해서 내면에 잠들어 있던 본능이 발산되는 대리 욕구를 느끼거든. 알렌의 메시지는 삶이란 멀리서 보면 거창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일상, 그 순간들의 집합이란 것이야. 스크린에서 얻어 낸 이 같은 영감은 내가 책에서 배운 어떤 진리보다 강력하거든.”

그녀가 덧붙였다.

“사회적인 갈등이 인간의 본능적인 자유 의지와 체제와의 끊임없는 싸움이란 건 동의해요..”

시트러스 향의 시큼한 백포도주가 목덜미를 젖시면서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참 묘하지. 케이시 당신을 처음 리시케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지금 이렇게 바라나시에서 얼굴을 맞대고 저녁을 함께 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는데.”

“난 했는데…”

그 당시를 되새겨보는지 케이시가 내 시선을 피한 채 허공에 대고 말했다.

“참 선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이 사람과 인도 여행을 함께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나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외외였다.

“리즈 알잖아요. 리즈랑 함께 여행하면 항상 이런저런 사람들과 많이 엮기거든요.”

“그렇지만 나와 엮인 건, 엮였다는 표현이 조금 우스운데, 나랑 알게 된 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이었어요. 새벽녘 버스 정거장에서 혼자 컵 라면 먹고 있는 나를 당신이 서둘러 부르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을 텐데.”

“만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어요.”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각났다.

“내게 처음으로 끌렸던 순간이 언제였는데?”

케이시가 슬그머니 미소 짓더니 수줍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강가의 전설을 얘기해주던 바로 그때였어요. 당신의 눈빛이 진지했어요. 마치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얘기를 내게 들려주듯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어요.”

내가 씩 하고 웃었다.

“당신도 얘기해줘요, 수. 당신은 언제였어요?”

내가 능청을 떨었다.

“언제라니. 무슨 언제를 말하는 거지?”

샐룩 해진 케이시가 입을 삐쭉거렸다.

“알잖아요?”

“글쎄. 난 모르겠는걸. 정확히 물어봐야 알지?”

케이시가 내 팔을 살짝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짓궂어요 정말. 좋아요, 수.”

목소리를 가다듬듯 케이시가 오른손을 목젖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내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어요?”

내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나도 강가의 전설을 얘기해 주던 그날 오후야. 언덕에 앉아 있는 당신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어. 공연히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용기를 냈지. 당신에게 다가가 물었잖아. 강가의 전설을 아느냐고?”

“기억나요. 난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고.”

“그때였어. 쓸쓸하게 보이던 뒷모습과는 달리 당신이 고개를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지었어. 그 미소를 본 순간 바로 난 당신과 사랑에 빠져 버렸어.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때 당신을 위로해주러 갔다가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졌거든. 그것이 당신의 가장 커다란 매력이야, 케이시. 자신은 쓸쓸하고 아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망설임 없이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그 고요한 힘!”

“그래서 신나게 전설에 얽힌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던 거군요.”
“당신과 사랑에 빠진 덕분에.”

“나 보다 5분 먼저.”

그녀의 말에 내가 식당이 떠나가도록 큰 웃음을 터뜨렸다. 놀란 찰리가 메인이 늦은 줄 알고 양 손에 말라이 코프타를 들고 나왔다. 허둥대는 찰리를 보면서 우리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식사를 하면서 리시케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회상하며 우린 계속 깔깔대고 웃었다. 식사가 끝날 즈음 내가 고백했다.

“리시케시에서 아파 몸져누웠을 때 비몽사몽 간에도 당신 생각만 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당신 꿈을 꾸다가 새벽에 깼는데 당신이 옆에 있는 거야. 피곤에 지친 얼굴로 내 침상에 머리를 기대고 선 잠을 자고 있는 거야. 머리칼은 마구 헝클어진 채.”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겠는데요?”
“아니. 정말 아름다웠어. 방금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머리칼은 온갖 방향으로 다 뻗치고 꼬부라져 있고, 침까지 흘리면서.”

“수~”

케이시가 화난 시늉을 하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때 당신 정말 매력적이었어, 케이시.”

“경고해요, 수. 그만둬요 그 얘기…”
계속하다간 케이시가 정말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웃고 즐기다 보니 얘기가 무르익고 디저트도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약간 풀어지긴 했지만 취하진 않았다. 자, 이제 큐 타임이다. 내가 왼 손을 허공으로 보란 듯 뻗어 올린 뒤 천천히 뒷 머리로 가져와 세 번을 쓰다듬었다. 설거지를 하는지 부엌에서 서성대는 찰리가 그걸 놓쳤다. 어차피 한 번에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었다. 잠시 찰리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가 다시 큐를 줬다.
큐를 받았다는 확인으로 찰리가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부엌 한쪽에 놓인 아이포드 독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그런데 기계 조작이 서툰 탓인지 엉뚱한 음악들이 나오다 끊겼다. 오늘 저녁 내내 별 탈없이 서비스를 해주던 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버벅대고 있다. 케이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찰리를 돌아봤다. 한동안 클래식, 한국 가요의 첫 소절이 나오다 끊기길 반복하더니 마침내 기다렸던 귀에 낯익은 트렘펫 연주가 은은하게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윈튼 마샬리스의 스탠더드 타임 시리즈 넘버 2의 다섯 번째 트랙 ‘안고 싶은 그대’다.


일생일대의 결정적인 순간이 바야흐로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풀어졌던 몸과 마음이 일순간 팽팽하게 긴장되는 걸 나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슬그머니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참, 그나저나 케이시 이거 알아?”

내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케이시도 정색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뭐요?”

“당신 오늘 저녁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는 걸.”

“고마워요. 수. 당신도 보기 드물게 멋진 남자예요.”

그녀의 답변이 바로 내 큐였다.

“케이시, 보기 드물게 멋진 남자와 세상에 둘도 없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자가 서로에게 나머지 생의 동반자가 되어주면 어떨까?”
내가 주머니 속의 상자를 손에 쥐고 케이시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때 케이시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걸 나는 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케이시가 델리에 올라가 있는 동안 바라나시를 샅샅이 훑어 찾아낸 든 반지가 들어 있다. 작고 검은 돌이 박혀 있는 은반지다.


“케이시, 나와 결혼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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