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ba(النكبة, 나크바, 아랍어로 “대재앙” 또는 “재앙의 날”)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그에 따른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강제 이주와 고통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 및 기억입니다.
#Nakba
핵심 요약
항목 내용
의미
아랍어 “Nakba” = 대재앙, 재난
시기
1947~1949년 (특히 1948년 5월 15일 이후)
발생 계기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1948)
영향
약 70~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강제이주, 수백 개 마을 파괴, 난민화
역사적 배경
1947년: UN 분할 결의 (181호)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국(55%) vs 아랍국(45%)**으로 분할 제안.
예루살렘은 국제도시로 설정.
유대 측 수용, 아랍 측 거부 긴장 고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다음 날 **아랍 국가들(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이 침공 제1차 중동전쟁 발발.
Nakba의 구체적 결과
대규모 추방 및 탈출
이스라엘 건국 전후로 약 400~500개 팔레스타인 마을이 파괴.
70~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강제로 집을 떠남 (UN 추산).
이들은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가자지구, 서안지구 등지로 흩어져 난민으로 정착.
폭력과 학살
드이르 야신 학살(Deir Yassin massacre): 1948년 4월, 이르군(Etzel)과 레히(Lehi) 유대 무장조직이 1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
이후 공포가 확산되어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이주.
토지 몰수
이스라엘은 무주지 원칙을 적용해 이주민들의 땅을 몰수.
1950년 “Absentees’ Property Law” 제정 난민이 남긴 땅은 국가 소유로 전환.
팔레스타인인의 기억과 의미
5월 15일을 공식적인 **“Nakba Day”**로 지정해 매년 추모.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과 억압의 상징으로 여김.
Nakba는 현재까지도 난민 귀환권(Right of Return), 국가 정체성, 국제법 논쟁의 핵심.
#NakbaDay
국제사회 반응
UN 총회 결의 194호(1948): 난민은 귀환하거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
그러나 이스라엘은 대규모 귀환 불가 입장을 고수.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인식.
현재적 영향
약 570만 명의 난민과 그 후손들이 여전히 난민 신분 (UNRWA 등록 기준).
팔레스타인 내 정치, 교육, 대중문화에서 Nakba는 집단기억으로 강하게 유지됨.
이스라엘 내에서는 Nakba 기억을 억제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
Nakba 관련 자료
Ilan Pappé –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Rashid Khalidi – 《Palestinian Identity》
UNRWA 사진 기록 및 Nakba Archive
Nakba 당시 특정 마을 사례, 난민 캠프 지도, 유대계-팔레스타인계 역사학자의 시각 차이도 정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