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皇南大塚)”에서 출토된 사산조(ساسانیان, Sasanian) 페르시아 유리제품은 고대 한반도와 서아시아 문명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됩니다.
#Sasanian_Persia
황남대총과 출토품 배경
황남대총은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의 최대급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으로, 5세기 전후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금관, 금제 허리띠, 각종 장신구와 더불어 페르시아·로마·중국계 수입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유리제품은 신라에서 자체 제작하기 어려운 기술적 산물이었기 때문에, 교역망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산조 페르시아 유리의 특징
1. 제작 시기
사산조(224–651년)는 페르시아 고대 왕조로, 유리 제작 기술이 크게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불투명 또는 반투명한 청색·녹색 유리, 금박을 입힌 잔, 절개·절조기법을 통한 장식이 특징적입니다.
2. 제작 기술
블로잉(유리 불기) 기법: 로마에서 발전한 기술을 페르시아가 수용·발전시켜 대량 생산 가능.
커팅(연마) 기법: 표면을 갈아내어 문양을 새기고 반짝이는 효과를 부여.
일부 제품은 금·은박 장식도 포함.
3. 출토품 사례
황남대총에서는 녹색 유리병, 청색 유리잔, 구슬류 등이 확인됨.
이들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교역품으로,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에 이르는 **실크로드(육상·해상)**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
역사적 의미
신라의 국제 교역망: 신라가 단절된 지역이 아니라, 실크로드 말단부에서 활발히 외래 문물을 수용했다는 증거.
페르시아-신라 관계: 직접 교류 가능성보다는, 중앙아시아·북중국·남중국을 거친 중계무역 결과물이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됨.
문화적 위상: 사산조 유리는 귀한 외래품으로, 단순 실용품이 아니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품/부장품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사산조 페르시아 유리제품은 신라가 5세기 전후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 속에서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황남대총 출토 페르시아 유리병 사진이나, 다른 동시대 한반도 유리 출토품과의 비교표
#切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