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학 라빈(יצחק רבין, Yitzhak Rabin, 1922–1995)은 이스라엘의 군인, 외교관, 정치가로, 두 차례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안보의 상징적 지도자이면서도, 동시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정을 추진하다가 극우 유대인에 의해 암살당한 비극적 인물로 기억됩니다.
#YitzhakRabin
생애와 군 경력
1922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 유대인 공동체에서 성장.
영국 위임통치 시기부터 팔마흐(Palmach)에서 활동하며 무장 투쟁에 참여.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에서 주요 지휘관으로 활약.
이후 이스라엘 국방군(IDF)에서 요직을 맡아 참모총장(1964–1968)으로 임명.
1967년 6일 전쟁 당시 참모총장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 중 한 사람.
#SixDayWar
정치 경력
1974년 골다 전쟁 이후 레비 에ש콜 사임 뒤, 이스라엘 최초의 토착 출신(사브라) 총리로 선출.
1977년 부패스캔들과 정치위기로 사임했으나, 이후 재기.
1992년 노동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 총리로 복귀.
평화 노력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이 격화되던 시기, 라빈은 오슬로 협정(1993)을 체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상호 인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설립 및 점진적 자치 확대 합의.
이로 인해 노벨 평화상(1994)을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와 공동 수상.
#NobelPeacePrize
암살과 유산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평화 집회 연설 직후
극우 유대인 청년 이갈 아미르에게 피살.
암살은 이스라엘 사회의 극심한 분열
(안보 중심주의 vs 평화추구 노선)을 드러낸 사건.
라빈의 죽음은 중동 평화 프로세스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이후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짐.
라빈은
군인으로서 이스라엘 안보의 상징,
정치인으로서 팔레스타인과 화해를 시도한 평화추구자,
자국 극우 세력의 총탄에 쓰러진 비극적 지도자였습니다.
라빈과 오슬로 협정의 구체적 조항이나,
그의 죽음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 협상에
미친 파급 효과
#OsloAcc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