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민 30 년째
2022. 12
큰딸이 제2 바이올린 주자, - 큰딸 이야기로는 자기가 바이올린 부악장?로 있는 독일 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30년 전 6개월짜리 그 딸아이를 안고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용감하게 이민을 왔었는데
이젠 그 딸이 다 커서 분신처럼 좋아하던 바이올린을 들고 독일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함께 모국 한국을 방문해서 공연까지 한다고 하니 아빠로서 기분이 묘하다.
딸의 부탁으로 한국공연 후기 SNS 올라오는 것들을 모조리 모아서 보내주었는데
클래씩을 좋아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음에 놀랬고 학생들의 전문가 같은 비평에 또 놀랬다.
한국말은 잘하지만 읽기 쓰기에 약간 약점이 있는 딸은 한국어가 능통한 아빠찬스를 써서
SNS에 올라온 모든 후기들을 오케스트라에 보낸다고 ㅎ 피드백용으로
6개월짜리 갓난 한국아이가 뉴질랜드에 와서 대학교까지 나왔으니
영어는 완벽하게 잘하는데 한국어로 읽고 쓰고는 역시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대신 영어가 가능하니 독일에서 대학원부터 음악공부할 때에는 독일어가 쉽게 배워지더라는데
딸 주변에 한국에서 금방 온 유학생들은 어려운 그 독일어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고.
역시 30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결정을 잘했나 싶다.
딸은 영어도 배우고 무엇보다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는 뉴질랜드에 살게 해 주어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는 나와 우리가족을 지금까지 살게 해 준 이 땅 뉴질랜드에 고맙다.
그 옜날 종로 교보문고 건물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영주권 인터뷰할때
어떤 형태로던 뉴질랜드를 위해 좋은 일들을 하여 공헌하겠다고 담당 영사와 약속을 했었는데
나는 못했지만 대신 딸이 독일 과 유럽에서 뉴질랜드 위상 ? 을 조금이나마 세우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바이올린 하면 유명한 독주자가 되어서 세계를 다니며 공연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아빠 생각이었다 (- 대다수 한국 아빠들처럼~~~)
딸이야기로는 바이올린으로 독주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협연하여 하모니를 만들며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독주자를 위해 뒤에서 음악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다고.
나 혼자가 아닌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한다는 것도 딸아이에게 아주 좋은 경험일 듯.
이 세상은 절대로 혼자살수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이다.
나의 짧은 경험에 의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