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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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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Yoon Sep 13. 2016

뉴질랜드 ..  My country  

해외생활  체험수기 -4 

첫 직장을  잡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인 교민  몇분이  우리집을  찾아오셨다.  이곳에 오래전부터 정착하신 분들이다.   

원양어선 배도 타고   녹용사업도 하셨단다.


“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되었나요 ,   아는사람이라도  있었나요 ? 

“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곳엔 ” 

“ 허 참,   그런데  이곳에   왜  왔을까 …    이곳은  일자리도 없고   해먹을것도 하나도 없는데”

“  녜에..  그것…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 한국에서  살면   돈벌이도 더 좋고   더  좋을텐데 “   

“ 한국사회에서는  도저히   잘 살  자신이   없구요 .  저에겐    미래가  안보여서요 “





하나도   능력없는   나에게   한국에서는   미래가  안보인건   사실이었지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한국을  뛰쳐나왔다는  내 속마음은   말 하지 못했었다.  

일자리도  없는  이곳에    6개월 짜리  갓난  아이를 데리고온    우리젊은 부부가   

그들에게는  마냥  철부지로 보였는 가보다.

딱하니  정말   안됐다는   표정만 계속 지으셨다.  






뉴질랜드에서   모두가   어렵다는   그  일자리를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애초  작전대로   그나마   영어보다도 더 능숙한 것은   일본어 이라서   

일본쪽   관련 일을  하는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어  보기로  했다.   


2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지만     

당시엔   정말   “절박함”  과   동시에   “ 자신감”  을 가졌었다.  

당시   나의  은행  잔고는  약 40 만원.    

앞으로  이곳을   찾아오실   젊은  이민후배들에게도  꼭   충고해주고  싶은 것은    

“절박함 “ 과  “ 자신감”  이다.




퀸즈타운 에서  -1 





그러한  회사를   찾는 방법은  아주  쉽다.     

전화번호부  White page 를 펼쳐놓고   

일본쪽   무역이나 일본  관광객을   받는 일을   하는   모든 곳을  리스트 했다.    

해서   50 개가 넘는  회사에   나의   이력서는   일방적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도    난 내내  즐거웠다.    분명히  연락이 올것이라는 느낌에.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우편함을 열어보곤 했다.     

그후  우편물  배달되는 시간까지  알게되고

자전거로  배달해주는   빨간색  유니폼의    우체부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게  되어  

아예   그  도착  시각에    맞추어 나와서   기다리기도 했다.   


일주일정도후에   나에게  처음으로   반가운   편지가 왔다. 

“ 미안하지만   지금    자리는 없다.     하지만     다음을  위해  너의 이력서를 보관하겠다 “

하루뒤에는   서너통 편지가   한꺼번에   왔다.

같은 내용이다.   






이민초기에    가장  어렵고 힘든것이    걸려온  전화를    받는것  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면    무서웠다.   

기다리던 전화가  아니고    상대방이 누군인지 모르기에    알아듣기가  더더욱  어려웠고  

다들  말을  빨리 해버러서  도저히  알아듣기가 어려웠었다.

이력서때문에   우리 집에  전화가  걸려오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전화가 울렸다. 나를 찾는다. 

너무긴장한 탓에   그다음부터는  하나도  안들렸다.  

“ @#$$%%^&&**((((()^%$$%^&&& “ 

외계인  언어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못하니   결국  전화는  끓어지고..

정말  답답하고    스스로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그놈의  영어는 왜   안들릴까. 


희한하게도    편지는 계속 도착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거절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화도   가끔씩   계속 걸려왔다.     


상대도   이유가  있으니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텐데   나는   한마디   대답을    못했으니.  

정말   답답했다.    

한국에서의  10년이 넘는   나의   영어공부는    얼마나 엉터리인가. 





전화는   계속 걸려오고     어느 순간   드디어   말이 들렸다.  

“  만나고 싶다.    인터뷰  할수 있나 “

 “  YES “ 

“  몇날 몇시까지  회사 로 나와달라 “

“ YES “  

고맙다는  “ Thank You “    를     서너차레 하고나서      

전화기를 들고     꾸벅 인사  까지하고  

전화를   끓고    그 회사 이름과    주소를   찾기위해    전화번호책을   펼쳤다  


없었다 .  그   회사는 없었다.        내가    그   회사이름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

전화번호도  모르니   내가   전화를  다시   걸수 도   없었고.   




어떤 경우는   인터뷰를 하러 갈   회사를   길거리에서   못찾아서  약속시간을 놓친적도 있고 

길이름 이나 주  소지   번호 가   다들    처음보는것들이라     전혀   익숙치 않았던 것.  

해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차를   몰지 않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훨 나아졌다.   길 주소지 파악에.    





수십번이  넘는    여러번  시행착오끝에     겨우  인터뷰를   할수 있었고  

그런   형대로   서너번 인터뷰를 해보니   

고용주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내용들이   거의  다들  비슷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예상되는  모범질문을   만들고    모범답안을   미리  만들었다. 

그리고  고용주가 말을  시작하기전에    내가 먼저 말을  많이 하는  선제공격으로   작전도  바꾸고 

영어가   약점이 있는  내가   가만히 앉아서   질문을  기다리면    백전백패.   






인터뷰   20 번째가  채 안되어서 

드디어    합격 !    

파트타임이지만,

시내에서  그나마   규모가 가장   큰   기념품 선물가게 ,   주로  일본인 관광객 상대.

하는일은     쓰레기 수거 담당,  화장실 청소

급료는 시간당   $ 7 

나의  이   합격소식에   그날   와이프는   울었다.   




퀸즈타운에서 - 2 






뉴질랜드에서는  해먹을것도 없고    일자리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 이라고    누가  말을  했을까. 

모든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내가 깨우친것은   

내가  절박하면  모든 건  다 된다 이다. 


고맙게도  그것을  나에게  가르켜준것은   뉴질랜드.


한국에서의   훈장이나  계급 다  내려놓고  한판 하는 곳. 




퀸즈타운 에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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