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취방스님 Jul 26. 2019

고려인

미지의 탐험을 위한 준비

나의 고등학교 자습서는 1쪽부터 30쪽 까지 나의 최선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나는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뭐 그다지 잘 난 것도 없는 내가 책 내용이 예측이라도 될 낫이면 여지없이 책을 덮어 버렸다. 또는 재미없어서 덮어버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작가가 지켜보지 않는다는 약점을 이용해 가차 없이 내가 결론을 지고 덮어버린 책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기억된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정말 무던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내가 읽고 쉽게 덮어버렸던 책처럼 내용 예측을 하거나, 재미없다고 덮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미 전편에 얘기했듯이 나는 러시아어를 전혀 알지 못하고 러시아에 도착했다. 이제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이 멋도 아니고, 대학교에 다닐 때처럼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닌 상황이 되었다. 당장 이 낯선 땅에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전투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외국어라는 것은 내가 마음만 급하게 먹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꾸준한 노력과 배우고자 하는 언어에 대한 흥미를 느껴야 진정 내 것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쯤에서 러시아어를 소개하고 어떤 언어인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 세계에는 많은 언어가 존재하고, 큰 줄기를 나눠보면 알파벳권, 한문화권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언어학 교수나 또는 전문가가 아니니 넓은 마음으로 틀린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러시아어는 이중 알파벳권 더 세부적으로 라틴어에서 파생된 슬라브계 언어이다. 처음러시아어를 봤을 때 사실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알파벳이 우리가 흔히 보던 영어와 비슷한 것들이 많고 일부 알파벳은 영어와 소리도 동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파벳의 소리가 다르다. 


러시아어 필기체

문법도 영어와는 완전히 다르다.

영어는 문장의 순서로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문장의 순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단어의 변형(러시아어에서는 "격변화"라고 한다.)에 의해서 문맥을 파악한다. 두 번째 영어는 존칭과 반말이 없이 대부분의 문장을 표현한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존칭과 반말이 존재한다. 세 번째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어는 한국 사람이 접하기 쉬운 언어이다. 반면에 러시아어는 반세기 넘게 적국의 수괴가 쓰는 언어였다. 그만큼 한국 사람에게는 접하기 힘든 언어이다.


지금 까지 주저리주저리 적은 내용이 내가 러시아어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고, 동북아시대 어쩌고저쩌고 할 때 러시아를 매력적으로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매력이 때로는 정말 치명적일 수 있다.


러시아 도착 후 러시아를 둘러볼 세도 없이 나는 러시아어 학원에 등록을 했다. 기숙사에서 어떻게 버스를 타는지 손짓 발짓과 이상한 영어로 알아보고 바로 다음날부터 어학원으로 등원하게 되었다. 이 어학원은 그래도 규모도 있고, 구 소련 시절부터 외국인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다른 나라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고, 학원 관리자는 내가 공부할 교실을 나에게 배정해주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물론 많은 유학생들이 그 학원으로 러시아 대학 입학을 위해 많이 왔지만, 그래도 단연코 최고로 많은 학생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역시 나도 중국인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고, 내가 공부하던 반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다. 처음에는 거기서 지도하던 선생님마저 내가 왜 러시아를 왔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이해한다. 나이 많은 만학도가 도대체 어떤 뜻을 품고 왔는지 대화도 안되고 뭔가 해보려는 것 같기는 하고 이런 오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이런 생각을 하고 간단하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을뿐더러, 나는 여기서 정말 뭔가 해보고 싶었다. 그 1호가 러시아어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정말 쉽지 않았다. 뭐 어떤 사람은 6개월이면 외국어로 대화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둥, 1년 정도면 귀가 트인다는 둥, 본인도 증명할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1년이 지났는데 그 당시 시장 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러시아어는 문법이 되지 않으면 일단 들을 수 없다. 처음 격변화를 배우고, 운동 동사, 능동 수동, 이런 문법적인 것을 배운다. 이런 기초적인 문법을 익혀야지만 이제 러시아어를 배우는 기초가 확립된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단 격변화가 마스터하는 데까지 아무리 빨라도 3개월 정도 걸린다. 다음 운동 동사를 배우는 데 3~6개월 정도 걸린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능동 수동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러시아 문법을 설명하겠다.


첫 번째 격변화- 말 그대로 격이 변한다. 예문: 나는 책을 읽는다. "Я читаю книгу. 야 취따유 크니구" 생긴 것도 희한하게 생겼는데 문법적으로 바뀌면 더 희한해진다. 저기 보이는"크니구"의 원형은 "크니가"다 뜻은 '책'이다. 그런데 이 '크니가'를 '크니구'로 바꾸지 않고 얘기하면 '나는 읽는다 책은'이렇게 해석된다. 물론 이 문장은 쉬운 문장이라 좀 센스를 가진 러시아 사람이 듣는 다면 이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장이 복잡해지면 그때부터는 내가 말하는 것을 러시아 사람들은 잘 못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운동 동사와 동사변화 러시아어는 항상 변한다. 부처님의 '세상 모든 만물은 변한다'라는 사상을 알고 언어를 만든 것도 아닌데 항상 변한다. 동사도 예외는 아니다. 변한다. 만고의 진리다. 사실 무언가 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처음에는 항상 의식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국어를 습관으로 사용한다. 즉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어느 세계에 있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의 언어를 관장하는 곳에서 의식하며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렵다. 이에 더해 언어의 난이도가 어려워지면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온다. 조금 말이 새기는 했지만, 사실 러시아어는 만만치가 않다. 명사도 바뀌고, 동사도 바뀌고, 형용사도 바뀌고, 남성형인지, 여성형인지를 모두 맞춰야 말이 된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은 동사이다. 동사 중에도 운동 동사라고 지칭하는 동사들의 향연이 시작되면 정말 정신 없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러시아어는 '가고' '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세밀하게 얘기한다. 한국 사람들이 또는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이 한국어로 대화할 때 '가고''오고'에 대해 대체적으로 그렇게 세밀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예로 '나 지금 가고 있어' 또는 '너 언제 집에 와?'그러나 러시아어로 하자면 '나 지금 가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말한다. '습관적으로 가는 건지', ' 한 번만 가는 건지', '버스로 가는 건지', '걸어가는 건지' 등등 처음에 이 설명을 들을 때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케묻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얘기해야 하는 건지, 이런 이유로 운동 동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포기하던가, 고생하면서 어렵사리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영어에도 없고 한국어에도 없는 러시아어의 특이한 문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이 정도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이렇듯 러시아어는 친밀해지는 것이 다른 여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어렵다.

하기야 지금도 러시아어는 지금 생각해도 낯설다. 다행히도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다. 한국에서 외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못 살린다고 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 나는 직업의 특성상 러시아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 러시아어를 지금도  훌륭한 업무 도구로 잘 사용하고 있다.


언어를 마스터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언어를 그다음에는 그들의 사고를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들의 문화에 내가 옮아가는 과정이라고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고려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