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3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은 무섭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당신이 찾는 무언가 있다면 용감하게 무서움에 맞서야 한다.
2003년 2월에 모스크바는 추웠다. 아니 모스크바의 겨울은 항상 춥다.
한국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떠난 유학길은 지도 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 미지의 세계를 떠나는 것처럼 두렵고 무서웠다. 그 당시 러시아에 대한 정보 조차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어려웠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서울에 있는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떠나는 길 밖에는 뭐 별 다른 대안은 없는 상태였다. 유학원에 전화를 걸어 내 사정(금전 상태, 현지 물가, 비전 등등)에 대해 한 차례 너스레를 떤 후 나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자칭 전문가라는 유학원 원장에 얘기를 듣고, 우리 집에서 서울행 고속버스 표를 끊어서 가는 것처럼 간단하게, 유학원 원장에게 러시아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모한 짓이 없다. 꿈은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반대로 꿈 때문에 현실이 어려워지는 법이다. 젊음은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임에는 분명한다. 난 확신했고, 이 출발이 내 인생을 바꿀 거라 생각했다.
출발. 이 간단한 단어에 담긴 많은 뜻을 아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하려는 지 모르겠다. 그 당시 상황에서 '출발은 편안함을 버리고 고생길로 들어선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직장 생활하다가 갑자기 뭔가에 이끌리듯이 내 미래의 꿈을 위해 또 해외라는 내가 살아오지 않은 미지의 장소에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 여권도 신청하고, 비자라는 드라마나 다른 친구를 통해서 들어보던 외계어 같은 문서도 준비해야 하고, 현지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면 필수인 파카 및 간단한 식료품 기타 생존을 위한 물품을 준비했다. 물질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쉽다 돈으로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생존에 필수적인 언어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언어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갚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중요한 것을 나는 그 당시 몰랐고,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얻어지는 줄 알았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이 난감한 상황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짜는 다가왔고 출발했다. 멋지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전편에 말한 동북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모스크바 쉐르메췌보 공항(인터넷 발췌)
도착. 내가 말하던 대로 미지의 땅에 오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행기라는 아주 편안한 운송 수단이 8시간만 견디면 방금 전까지 내가 먹고 싶었던 것도 사 먹고, 하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던 곳에서, 내가 입으로 표현하는 언어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더 많은 그런 곳으로 이동시켜준다.
이렇게 도착한 모스크바 세르메체보 공항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소설 속에서 보고 머릿속으로 상상해봄직한 추위 (지금은 이상 기후로 인해서 가끔은 한국이 더 추울 때도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북반구에 위치해 있고, 이런 위치 하나만으로 한국보다 겨울 기온은 많이 낮은 편이었다.)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정말 나에게는 충격 자체였다.
이미그레이션을 어렵사리 통과 후 숙소까지 이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와~ 이게 내가 생각하던 외국 생활이 아니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학원에 미리 얘기해놓고 공항에서 픽업해달라고 했지만, 픽업 서비스를 말할 때만 해도 한국사람이 마중을 나와 우아하게 러시아 생활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호텔 같은 기숙사에 첫날밤을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독을 풀고 눈 내리는 러시아를(닥터지바고에서 보던 뭐 그런 풍경) 가볍게 산책하듯 여행을 하고 유학이라는 멋진 내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꿈꾸게 될지 알았다. 여기까지 상상이고 나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생존과 우아한 꿈은 다르다. 가뜩이나 11남매의 셋째 언니가 혼나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넷째처럼 상황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어떻게 출국장을 나왔는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나를 맞아주는 것은 러시아 마피아같이 생긴, 덩치는 불곰국에 어울리는 풍채에 아주 소심하게 적어놓은 "박 기봉"이라는 내 이름, 난 그 당시 그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닌 줄 알았다. 내 이름은 박기원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러시아어에는 "원"은 발음하기가 어렵고 자연스럽게 "원"은"본 또는 봉"으로 밖에는 안된다. 여하튼 아무리 둘러봐도 내 이름과 비슷하게 생겨 먹은 거라고는 저 이름밖에 없어서 쑥스럽게 다가가 물어봤다.'Are you Nikolay?'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약속시간에 늦은 남자 친구를 쳐다보는 여자 친구의 눈빛으로 그리고 대답한다."ㅁ로;러ㅑ러;ㄹ러러;럼;ㄻㄷ핵ㄷ;ㅓㅎㄷ" 뭐 이렇게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무너지는 나의 비참한 영어와 밀려오는 러시아어의 공포감 'Sorry, I cannot speak russian' 정말 쏘리 한 일이긴 하다. 상대방한테 못 알아듣는 얘기를 했으니 어차피 한국어로 했어도 쏘리 한 상황임에는 매 한 가지였다. 이제는 가고 싶었다. 호텔 같은 기숙사던 그지 같은 움막이든 자꾸 나에게 묻지 말고 그냥 내가 기봉이처럼 생겼으면 '나를 너의 차에 실었으면 한다'라는 마음만이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 아저씨 한국 사람 픽업을 많이 나와서 그런지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고 조용히 내 짐에 그는 손을 옮긴다. 아직 그의 손은 웅녀가 마늘을 덜 먹어서 인간으로 완성되기 전의 태초에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낯선 추위와 이 추위를 증명하는 낯선 땅. 이제 가자 기숙사로 가는 길에 모스크바의 야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과 이념의 갈등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던 사람들은 함부로 발을 디딜 수 없는 땅이 었던 곳, 하지만 세계의 민주화 조류에 밀려 평등이라는 대 이념을 버리고 원래 인간에게 자유라는 이념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던 곳 바로 러시아라는 것이 느껴졌다. 1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국 유학원에 원장이 보여준 사진 속에서만 보던 기숙사였다. 기숙사에 도착하고 피로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니콜라이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말 안 통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도 힘들지만 그도 힘들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기숙사(인터넷 발췌)
도착한 기숙사의 광경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한국에서는 관공서에 가도 그렇게 살벌한 표정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부대에 징집되어있는 근엄한 모습으로 철통같이 입구를 지키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기는 러시아 아닌가? 기숙사에 KGB 본부라도 있는 양 한 명 한 명 통과자들의 신분을 조사하고 통과시킨다. 긴장한 상태로 입구를 통과해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기숙사에 사무실에 들러 간단한 서류 절차를 마친 뒤 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정해준 방을 배정받았다. 내 방은 14층이었고 우리나라의 2 베이 구조의 집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여러 개의 방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3인 정도가 쓸 수 있는 냉장고와 바로 붙은 문으로 화장실이 보이고 정면에 방 하나, 왼쪽으로 방이 하나 더 위치하고 있었고, 이 왼쪽이 내가 쓰게 된 방이었고 방은 한국의 조금은 널찍한 원룸과 비슷한 크기이고, 누우면 왼쪽과 오른쪽이 수평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침대가 있고, 창문 안쪽으로 책상과 의자 그리고 붙박이 장이 하나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피곤했고, 하루 사이 나는 정말 문화적 충격을 몸소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고픔도 있고, 이 문화를 빨리 습득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키오스크(인터넷 발췌)
모든 검문검색 같은 상황들이 정리되고 나서 내가 공황에서부터 목이 말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기는 러시아다, 그리고 나는 오늘 첨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암스트롱이 달 창륙에 성공을 했고 그 당시 그는 얼마나 흥분했을 것인가를 하지만 이건 그 당시 그의 감정이고 안타깝게도 몸은 달리 반응할 수 있다. 목이 마르다거나, 급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이런 상황들은 예상하지 못하고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당시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나는 목이 마르고 여기는 미지의 세계다. 게다가 내가 영어를 하면 '쏘리'한 상황이 발생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여권과 통행증을 지참하고 물을 사야 한다는 나만의 사명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한국에서 내가 찾은 정보에 의하면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에 수돗물은 석회물질이 많아 일반 음용 시 설사 및 복통을 동반할 수 있다.) 거리는 한산했다. 러시아에 겨울은 길다. 물론 밤도 길다. 여름에는 백야가 있고, 겨울에는 흑야가 있다. 저녁 5시만 되면 칠흑 같은 밤이 시작된다. 이런 이유 때문 에라도 거리는 한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거리에 나가 주변을 둘러보니 키오스크(한국에 가판대 같은 곳인데 컨테이너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간단한 음료 및 과자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가 있다. 자신 있게 다가간다. 내가 누구인가 앞으로 동북아 시대를 준비할 사람이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 아닌가. 콧수염 난 아주머니가 아주 귀찮다는 듯 쪽 창을 열고 물어본다. "ㄴ뫠뢔ㅑㅈ도래ㅑ?" 같은 인간이지만 서로가 사람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 외에는 서로 통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도 당신은 나에게 물이라는 구원만 주시면 되는 거다. "Water, please" 정말 플리즈였다. 영어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오랜 시간 배웠지만 이 please라는 단어가 이렇게 절실할 때 쓰는 단어인지는 그때 알았다. 그녀는 역시 내가 생가했던 대로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외계어를 구사할 뿐이다. "ㅁ러닐;머럴ㄹㄷ러ㅏㄹ" 궁금하다 무슨 말을 한 건지, 그리고 왜 러시아는 우리나라처럼 물건을 내가 집어서 계산대로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는 건지 내가 원치 않아도 이분과 내가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해 자꾸 토론할 수 밖에는 없는 문화인 것이다. 영어가 안 통하니 이제 남은 것은 '소리 질러' 래퍼도 아니고 그냥 소리를 지른다. 못 알아듣는다.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용기라는 것을 생각했다.
' 러시아에 사람들이 산다. 어떤 러시아 사람은 물을 먹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산다.' 이 이상한 삼단 논법이 끝난 후, 너무 나도 처참하게 기숙사 화장실에 가서 기숙사에 비치된 컵에 물을 떠서 먹었다. 청량했다. 그리고 1시간 후쯤 나의 장에도 청량함은 찾아왔다. 우여곡절에 하루가 끝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그냥 기절했다. 앞으로 펼쳐질 모스크바에 먼진 삶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