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시작
항상 글을 시작할 때는 뭐부터 써야 할까?라는 정말 원초적인 걱정부터 따르게 된다.
사실 고려인이라는 큰 제목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내가 어떤 한 고립된 지역에서 사는 사람을 일컫는 '고려인'이라는 주제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가 왜 고려인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졌고, 그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얘기함으로써 좀 더 자연스럽게 대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방법이겠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2003년 그 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기였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하는 시기였고, 2002년 월드컵에 열기가 다 식지 않아 너도 나도 자연스럽게 월드컵을 되새김을 하며 한 해를 시작하던 해였다. 물론 그때 나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있었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을 위해 많은 생각들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이 뭔가에 홀린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원래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의 원대한 꿈을 들으면서 살았지 내가 원대한 꿈을 친구들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또 앞으로 펼쳐질 멋진 인생을 위해 펜이라는 무기를 들고 전투적으로 공부를 하던 나도 아니었다. 근근하다는 단어는 그냥 들어도 궁핍하다. 그런데 내 학창 시절은 근근하다고 하는 것이 딱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인생을 살던 내가 20대 중반을 넘어 30대를 보고 달리던 중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다큐 방송을 보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 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한 문구만 머릿속에 남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캡처가 된다. 그 여자의 전부가 됐던 아니면 그녀의 매력적인 한 부분이 됐던. 이 와 똑같은 느낌으로 한 문구가 머릿속에 캡처가 됐다. "동북아 시대의 상륙"
"동북아 시대의 상륙" 이 문구가 무얼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김 대중 대통령이 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남 북 관계 화해 모드를 발판 삼아,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에서 중국 그다음으로 러시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을 갈 수 있다는 원대하고도 그 당시 실현 가능할 것 같은 말들이 너무 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럼 이런 분위기에 왠지 나도 발을 맞춰서 원대한 꿈을 펼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러시아행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없다. 그 당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 후 나와 대학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혼자 내리고 자퇴를 한 뒤 그저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직장에 걸맞게 아주 평온하고 조용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에 회사가 그만두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인생의 뭐 갑자기 그럴듯한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던 건지는 세월이 너무 흘러 가물가물 생각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동북아 시대" 그냥 우습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다 시청한 후 다음 날 서울에 러시아 유학원을 찾았다.
그럼 왜 러시아였을까?
동북아는 한국, 일본, 중국을 말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미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진출한 국가들이었고, 내 친한 친구도 이미 고등학교 때 중국에서 뭐가 원대한 꿈을 이룬다고 떠난 후였다. 그래서 나는 이 동북아에 가장 가까우면서 먼 미래까지 수혜를 볼 수 있는 국가 어딜까 생각했다. 물론 언어의 희소성도 또한 같이 참고해서 생각 중 러시아 쪽이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았고, 그만큼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드물었으며 철도가 개통하게 되면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인연의 시작은 정말 어의 없이 교통사고처럼 발생한다고 한다.
나와 러시아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러시아의 인연이 고려인을 바라보게 된 배경이 되었다. 뉴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지구 반대편에는 태풍이 분다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있던 생각이 현실이 되면서 지금 고려인이라는 대 주제를 바라보게 될지는 몰랐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얽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