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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다정 Jul 01. 2017

내 고향 서울은

홍대에서의 5년 반을 돌아보며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동네.

골목이 참 많은 동네. 

월요일이 일요일인 동네.

너무 빨리 바뀌는, 그래서 아쉽지만 대신 추억은 더 많이 만들어 주는 동네.



이 곳 홍대에 산지 5년 반 째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나버린 내 대학생활과 함께 이제 이 곳을 떠날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엄청 멀리 가는 건 아니지만서도 정든 고향을 떠나는 느낌에 아쉬움이 크다. 스무살이 되면서 줄곧 홍대 일대에서 생활을 했고 한 골목, 한 골목 추억이 없는 길이 없다. 낯 간지러운 기억이나 소위 흑역사의 8할도 역시 이 재미난 동네에서 일어났다. 유럽 여행을 갔었던 40일이 홍대에 있지 않은 최장 기간 이었고, 그 외엔 항상 이 곳이 나에겐 '돌아올 집'이었다.


워낙 빨리 변하는 동네라, 이 곳에 살면서 의도치 않게 '나만 알던' 과거형 장소들이 자꾸만 생겼다. 지금까지는 동네 생태를 함께 하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는데, 반대로 이제 떠나버리면 다시 왔을 때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모습들을 마주하게 될거라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하다. 



내 고향 서울은

내가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전형적인 지방 중소 도시였다. 땅덩어리 자체는 큰 축에 속하지만 번화가는 아주 작아서 딱히 구경할만한 것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색 있는 자연 환경이 있는 도시도 아니라서 지금까지도 참 심심한 도시로 느껴진다. 이 심심한 도시 속의 모범생 1 이었던 나는 학교가 인생의 95퍼센트의 존재감이었다. 말 그대로 집과 학교 근처를 되풀이 했다. 하루의 사이클은 무조건 학교 근처에서 시작되고 마감 됐으며 동네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실 내게 유년 시절의 고향은 도시보다는 ㅇㅇ초등학교-ㅇㅇ중학교-ㅇㅇ고등학교 이렇게 졸업한 학교들이 '내가 잘 자랄 수 있게 해준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다음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일대가 나의 고향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지도, 태어나지도 않은, 대학 진학이 아니었다면 정말 평생 손 꼽을 만큼만 왔을 수도 있는 이 동네는, 고향의 정의 중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 될 게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산울림 소극장 쪽 부근.

 


나를 알게 해 준 곳


대략 스물두살 이후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갔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기분이 가라 앉았을 땐 무슨 행동을 취하면 쉽게 풀리는지 같은 나를 이루는 조각조각을 맞춰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엔 학교였던 미대와 지역적인 의미의 홍대 모두 큰 역할을 했다. 전자는 학교 생활 안에서 만나는 똑똑한 친구들 선배들과 정말 좋았던 수업 등이 있겠다. 후자는 내가 더 새로운 환경에 노출 되고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환경적인 특징이겠다.


사실 요즘 홍대가 변하는 흐름을 보면, 흔히 떠올리는 '홍대스러운' 것 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런 수식어가 3년 전만 해도 많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멋있게 보이려는' 사람들과,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에서 나도 한층 자유로웠다. 제 2의 고향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대부분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우리는 다같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많아서 즐거웠다. 세세하겐 옷이나 화장 같은 꾸밈에 있어서 더 과감해졌고, 행동 거지도 전보다 남을 신경 덜 쓰게 되었다. 그저께 누군가에게 대학 와서 이런식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얘기 하니, 사실은 변한게 아니라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제서야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 걸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처럼 홍대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곳이다. 



더 씩씩한 다음으로 보내줄게


이 시끌벅적한 동네는 '혼자를 즐기는 방법'도 많이 가르쳐 주었다. 정사각형 꼴의 '방이자 집'에 불을 다 끄고 누워 새벽에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어쩔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누워서 걸어서 오분이면 닿을 북적이는 거리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더욱 내가 있는 공간이 섬처럼 느껴졌다. 둥둥. 부유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그 잔잔한 우울함이 싫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점점 그 시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또, 대부분의 사람이 '같이' 다니는 길거리도 혼자 누비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 이제 어느 장소를 가든 잘 다닐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 특히 경의선 숲길 공사가 끝난 후엔 밤 산책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재미가 컸다. 그럴 때면 동네 자체가 동고동락 하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이 동네에서 난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교복을 벗고 처음 맞닥뜨린 서울 살이. 이를 통해 나는 어느 정도 완성형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십 대의 두번째 장을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졸업을 하면서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떠나서, 예전이라면 즐길 정도의 외로움이 요샌 부쩍 진짜 외로움으로 다가오는데, 전혀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면 외로움이 더 커지고 힘들 수도 있을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이 정든 동네를 떠나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곳에서 지난 시간처럼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오년 동안 함께 하며 마지막엔 떠나는 용기까지 내어준 이 동네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씩씩한 다음으로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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