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다이어트는 언제 끝날까?

봄바람이 불면 생각한다. 왜 찌웠을까. 겨울잠을 잘 생각이었나.

by 이림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지난 주말, 새벽같이 일어나 무려 '공복 유산소' 운동을 했다. 체중 감량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공복 유산소 운동. 전날 밤부터 다부진 각오를 다지며 알람을 맞춰놓고, 알람이 울리면 깨어나 어기적거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실내 자전거를 탔다. 아이가 깰까 봐 숨 죽이고 싶었지만, 안 움직이던 몸뚱이를 움직이려니 절로 헉헉 소리가 났다. 악악 대며 운동을 하고 '살아 살아 내 살들아, 다시는 보지 말자' 생각하며 체중계에 올랐다. 첫째 날, 체중은 1도 변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작 첫날이니까. 둘째 날, 역시 체중은 1도 변하지 않았다. 조금은 의아했다. 안 흘리던 땀을 그렇게나 쏟아내고 똥 무게라도 줄여보자며 유산균을 먹고 화장실에서 구렁이 같은 것도 내보냈는데, 어째서 1그램도 빠지지 않은 건지 이상했다. 셋째 날, '오늘은 당연히 줄었을 거야' 생각하며 체중계에 올랐다. 예상은 빗나갔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당연히 줄었을 거라 생각했던 체중은 늘어나 있었다. 아침마다 헉헉댄 지 3일째. 0.1그램이 늘었다.


화가 났다. 달콤한 휴일 늦잠을 외면하고 무려 3일씩이나 일찍 일어나 설쳐서 얻은 결과가 0.1그램 증가라니. 이럴 거면 운동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먹고 실컷 자도 제자리였던 몸무게가 운동해서 늘어나는 거면 살던 대로 사는 게 더 낫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일이나 고생하고 체중계에게 외면당한 나를 위해 뭔가를 시켜먹어야겠다는 야무진 계획까지 세웠다. 일사천리였다. '어라, 안 빠졌네'가 떠오르고 '에라이 몰라' 화가 나고 '일단 포기'까지, 생각의 흐름은 빛보다 빨랐다. 체중계 앞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나에게 뭘 먹여주지' 생각하며 배달앱을 펼쳤다. 화려한 메뉴들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확 땡기는 녀석이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넘기다 문득 '그래도 살 안 찌는 회를 먹어볼까' 하는 나를 발견했다. 우스웠다. '에라이 몰라' 해버리고도 체중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니.


내 몸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살 덩어리는 3kg. 1년 전쯤부터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쉽게' 빼고 싶어서 다이어트 한약까지 사 먹었다. 덕분에 얻은 결과가 지금의 체중. 목표 체중까지 남은 건 3kg. 이 숫자가 내 앞에 남은 지도 벌써 수개월째다. 월초가 될 때마다 이번 달에는 반드시 3kg을 뺄 거야 계획을 세우고, 삶은 계란 닭가슴살 토마토 같은 것들을 먹다가 질릴 때쯤엔 '고생한 나를 위해 치팅 데이'를 가졌다. 어찌나 스스로를 아끼는지 알뜰살뜰히 챙겨 먹였다. 월 중순쯤 되면 친구를 만나게 됐고,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을 위해 먹었다. 그리고 또 월말이 다가오면 '다음 달부터는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고, '월말인 지금 먹어둬야 다음 달에 안 먹고 싶을 거야' 하며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가고 연초도 흘러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3월이 되었다. 3월. 돌고 돌아 이번 달 목표는 또다시 3kg 감량이다. 운동 3일 차. 0.1그램을 얻은 나는 이번 달 말에는 어떤 몸무게를 가지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한 달이라는 기한을 정해두고 이 난리를 치는 걸까. 목표 설정에는 반드시 기한을 둬야 한다고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열심히 살 테다' 하며 읽은 자기계발서들. 이런 걸 왜 읽어 하면서도, 다들 읽는다는데 뭔지 한 번은 보자 하며 읽었던 유명하고 유명한 책들. 그 어디선가 말을 했다. 큰 목표를 문장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세부 목표들을 설정하고 목표를 이룰 기간을 잡아 실천하라고. 단기간에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면 원대하게만 보이는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아하. 끝도 없이 늘어지는 나를 자극하려면 기간을 설정해야 하는구나 깨달았고, 10일에 1kg 빼기를 3번 쌓아서 3kg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보자 생각했었다.


한 달 후를 상상해봤다. 3일간 0.1kg을 얻은 이 좌절을 극복하고 어찌어찌 노력하여 1.5kg이 빠졌다면? 이것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실패인가. 실패자는 그럼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 달 더 노력해야 할까, 그쯤에서 만족하고 살아야 할까? 만약 3kg을 뺀다면, 그 다음은 어찌 될 것인가. 이 체중감량을 '성공!' 한다 해도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다이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량한 체중을 '유지'해 나가는 것. 목표를 이뤘으니 나는 성공했지 하며, 다이어트 이전 생활로 돌아가면 또다시 살이 찔 테고, 내년 3월에 또 '재도전' 따위를 하고 있을 거였다. 단순한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꾸준한 관리가 이 체중감량의 최종 목표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 달의 기간 안에 달성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갈 지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


나는 '왜' 살을 빼고 싶은 것일까. 더 예뻐지고 싶어서? 예뻐져서 뭐하게. 건강하고 싶어서? 그럴 거면 술을 끊는 게 빠를 텐데.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것을 평생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 본 결론. 나는 '스스로가 사랑하는 멋진 인간'으로 나이 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옷가게에서 맞는 옷이 없어서 돌아 나온 경험을 몇 차례 하면서, 내 몸뚱이의 살들이 내 자존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 옷가게를 나오면서 '더 큰 옷을 파는 가게를 찾아야겠다' 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했고 '이렇게 살찐 나는 참 못났어' 하며 자학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 나를 보며 '적정 체중'을 가지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싶으니까.


다이어트는 단순한 '성취'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것. 그렇게 꾸준히 나아가며 나이 들어가는 것. 그 안에 체중감량이라는 작은 목표가 있을 뿐이었다. 기한은 무의미했다. 기한을 정해두니 성급하게 성공이냐 실패냐 이름 붙였고, 그 이름표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어리석었다. 눈앞에 보이는 목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문제임을 조금은 알게 됐다. 누군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리부트' 하라고 하는 이 세상에서, 휘청휘청거리다 조금은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한 발 한 발 꾸준히 움직이고 싶은 거다. 어느 순간 멈춰서 돌아보면 그곳이 제자리라 하더라도, 적어도 '움직이는 인간'으로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분법이 문제였다. 삶은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것일 텐데 한 시기만으로 어떻게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을까. 모든 상황을 이러한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 내가 이제야 보였다. 한 달에 5권. 육아휴직 후 정한 나의 독서 목표였다. '한 달'이라는 기한과 '5권'이라는 숫자에 집착해, 매달 성공이냐 실패냐 결론 내고 있었다. 지난달은 실패했으니 이번 달은 성공하자며, 읽고 싶지 않은 날에도 목표량을 채우려 페이지들을 넘겼다. 그렇게 읽은 글들은 눈에도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5권을 채우는 것이 중요할까, 마음에 남는 글귀들을 기억하고 곱씹는 것이 중요할까. 나에게 맞는 방법은 곱씹는 것이었다. 그럼 애초에, 왜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이것 역시 '좀 더 멋진 인간'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굉장히 추상적이고 추상적인 목표. '좀 더 멋진 인간'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한 궤적들. 그 궤적을 잊지 말고 꾸준히 이어가면 되는 것인데 기한과 성패에 집착한 나를 돌아본다.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쓰고 싶은 마음에 쓰다 보니 호흡을 길게 이어가는 긴 분량의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글 하나하나의 '라이킷'과 '조회수'에 연연하며 성공/실패 판단하려다 보니, 잠시 들러 하나의 글만 읽는 이들에게 '임팩트' 있는 결론을 내린 글들을 보여주고 싶어 욕심을 냈다. 반성을 하며 새 매거진을 발행했고 나름은 애를 썼지만, 어느 순간 다시 보니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관두고 싶었다. 호흡이 긴 글, 책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 주문'에 갇혀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자문했다. 이런 글을 누가 책으로 내주겠냐, 내 주제에 무슨 책이야. 성급하게 '실패'라 이름 붙였다. 궁극적으로 물었어야 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왜 쓰고 싶어 하는가. 이 역시 '좀 더 멋진 인간'에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글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해 주고 돌아보게 만든다. 엉켜진 감정들을 정리해 풀어내게 만든다. 그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그저 '좀 더 멋진 인간'이 되어 가기 위한 '과정'이라면 못할 이유가 없었다. 성급하게 실패라 이름 붙인 스스로가 문제였다. 삶은 그저 진행형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을.


'인디언 기우제'가 떠오른다. 과거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 의문을 품은 이들이 비결을 물었고, 인디언들은 간단히 비결을 말했다.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낼 뿐"이라고. 기우제를 매일 계속 지내다 보니 그 어느 순간 때마침 비가 온 것이다. 인디언들의 정성에 하늘이 감복한 것도 아니고, 인디언들이 신비로운 주술을 부렸던 것도 아니다. 그저 비가 오는 그 순간까지 기우제를 이어가는 것. 비가 오고 나면? 다음 가뭄 때에 그들은 또 '비가 와야 멈추는' 기우제를 시작할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저 계속하는 것이다. 언젠간 비가 올 것임을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다이어트든 독서든 글이든 성급하게 '실패'라 이름 붙이지 않으려 다짐해본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론들이 '실패'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으리라. 어차피 인생 길고, 꾸준히 하다 보면 '좀 더 멋진 인간'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을 다잡아본다. Life is going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