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뻔해도 커피는 맛있지

by 이림

“엄마가 할머니께 연락드릴게.”

주말, 아이를 성당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섰다. 시어머님이 다니시는 성당, 나는 그곳으로 발을 들이지 않는다. 아이라도 보내라 말씀하시길래, 그러겠다고 응했다. 신앙이라도 품게 되면,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원에 보내듯, 신앙이라도 배워오라며 아이를 성당에 데려다준다. 아이가 들어가고 어머님께 카톡을 보냈다. "어머님, ** 성당에 들어갔어요"라고 습관처럼 쓰다가, 굳이 멈춰 서서 '어머님' 글자를 지웠다. '-어요'로 끝나는 문장도 왠지 다정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들어갔습니다'로 바꿨다. 예의를 갖추되, 친밀감은 없이. 이상한 퇴고 과정을 거치고서야 문장을 놓아줬다. 풀려난 문장이 카톡창 안으로 달아난다.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까. 저 문장이 닿을 순간의 마음까지는 알 길이 없으므로, 그대로 폰을 닫았다.


미사가 끝나기까지 1시간. 머물 만한 곳을 찾아 헤매곤 했었다. 성당 근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딱 두 군데. 공원 혹은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땐 공원에 앉아있곤 했었다. 조금은 추워도 참으면서, 앉아있기도 어려우면 그저 근처를 걸어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나올 때부터 계획을 세웠다. 스타벅스로 가야지. 선물받은 근사한 벚꽃모양 스타벅스 카드가 있으므로, 그 카드로 죄책감없이 커피를 마셔야지. 그리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과 카드를 챙기며 씨익 웃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1시간이라니. 기분좋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역시, 맛있는 스타벅스였다. 책도 맛있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문장이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문장이 멋있어서 커피가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들. 사치스럽게 여유를 즐겼다. 얼마나 흘렀지.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야했으므로, 꾸준히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 좋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건너 자리에 띄엄띄엄 앉아 공부를 하는 2~3명의 학생들이 보였다. 매우 열중한 듯한 그들을 보며, 시험기간인가 생각했다. 5월인데? 하긴, 시험기간과 무관하게 꾸준히 이어 나가야 할 공부도 있으니. 그들의 커피잔은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아마도 따뜻한 무언가를 담았을 컵은 밀어놓고, 그들의 눈은 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바스락, 책 넘기는 소리를 들으니 바스락 거리던 나의 한 때가 떠올랐다.


나에게도 계절과 무관하게 책을 파고들던 시절이 있었다. 20대. 대학은 졸업했으나 더이상 다닐 곳이 없었다. 어디엔가 소속되어야 하는 때였지만, 소속을 찾지 못한 막막한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 품었던 꿈은 무려 예능PD. 웃음과 감동이 있는 프로그램들을 보고 자란 나는, 그런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공도 꿈에 걸맞게 선택했고,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졸업이 다가왔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꿈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그곳을 향해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PD가 되는 길의 문턱엔 필기시험이라는 높다란 관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상식, 작문, 논술. 보통은 이 세 과목으로 시험이 치러졌다.


미친 놈처럼 신문을 읽던 시절이었다. 하찮은 열정에 '미친'을 붙이기엔 좀 부담스럽지만, 어쨌거나 조금은 미친 것 같은 신문읽기였다. 신문에는 상식시험에 나올 법한 이슈들이 가득했기에,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읽어댔다. 신문마다 논조가 다르므로 여러 종류를 한 번에 읽어야 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천차만별 해석. 그 어딘가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언론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고, 방구석 비평가로서 열심히 세상을 지켜봤다.

신문읽기 대장정은 사설 필사로 마무리되곤 했었다. 팔락팔락 신문을 넘기며 메모를 하며 읽다가 마지막 오피니언면에선 공책을 꺼냈다. 문체를 교정하고, 글 쓰는 속도를 높이는 것. 그것이 필사를 하는 이유였다. 시험은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완성해 제출해야 하는 것이었고, 빠른 시간 안에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글씨를 쓰는 것이 중요했다. 악필은 죄였다. 죄 많은 글씨체와 꾸밈 많은 문체를 버리려, 배운 분들이 쓰신 사설을 베끼고 또 베꼈다.


문체도 속도도 조금씩 변화하던 그 무렵, 이제 내용물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술은 결국 논거 싸움이었다. 이게 '옳다'거나 저게 '그르다'거나,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주장을 길게길게 펼치며 하얀 종이를 채워야 했지만 펼쳐낼 지식이 부족했다. 온갖 나라 소설책을 읽어대던 '고상한' 취미를 끊었다. 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논술에 힘을 실어줄 자료가 있는 책들만 찾아 읽었다.

신문도 책도 모두 도서관에 있었으므로 거의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갈 차비가 없는 날엔 집에서 또 책을 읽었다. 감상도 감정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던 나날들. 읽고 보고 듣는, 모든 행위는 시험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깔깔거리며 보던 TV 프로그램도 기획안을 생각하며 바라보자 웃을 수 없게 됐다. 모든 일상이, 시험에 의한 시험을 위한 시험의 것으로 바꼈지만 탈락만 거듭했다. 8월에 졸업을 하고, 가을 겨울, 봄, 여름, 또다시 가을이 왔지만 여전히 소속될 곳은 없었다.


하얀 종이와 까만 글씨. 그것들 곁에서 1년을 넘게 맴돌자, 내 몸에서도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요즘 뭐해" 물으면 바르작 화가 났고, 잠시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스스로를 경멸했다. 그런 생활에 넌더리가 날 때쯤, 예능PD와는 한참 거리가 먼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 또 시험을 준비해야지 마음 먹었지만, 정신을 차리니 14년이 흘러 있었다.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학생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나도 너희와 같을 때가 있었다고. 살아보니, 그래도 꿈이 있는 건 좋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나 때는 말이야, 매일 도서관에 갔어. 그땐 도서관 밥이 2000원이었지. 중앙도서관이 제일 쌌어. 2000원으로 밥을 먹고 왕복 차비를 쓰면 4000원, 자판기 커피 2잔을 먹으면 4400원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어. 그래서 도서관에 갔지. 도서관에 갈 차비가 없는 날도 있었어. 그래서 말이야. 내가 그 시기를 보내고 여기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말이야. 너희 지금 마시는 이 커피가 얼마니? 너희는 이 커피를 사 마실 여력이 되잖니. 젊은데 뭘 못해. 힘내.


오, 맙소사. 상상을 하다 깨닫게 되어 버렸다. 나는 꼰대였다. 그들의 젊은 시절에 대해 '다 안다는 듯' 한 마디 말 보태고 싶어하는 꼰대. 내가 상상한 멘트들에는 분명, '아프니까 청춘이다'같은 꼰대스러움이 뚝뚝 흘러 넘쳤다.

이게 다 부러움 때문이구나, 깨달았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청춘들은 그 존재 자체로 반짝여서,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그들의 청춘이 샘이 나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연륜' 혹은 '아는 체'로 나이듦의 서글픔을 숨기려는 가련한 상태. 이것이 꼰대짓이구나 알게 됐다. 입을 다무는 게 나은 나이가 되어감을, 새삼 느꼈다.






꼰대의 스타벅스 nick name은 꼰대스러운 '봄밤'이다. 이 시를 읽고 한창 꽂혀 있던 어느 봄, 카드를 만들었었다.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이여, 서둘지 말라. 애타는 마음이여 서둘지 말라."

이 시를 읽으면, 매일 바스락 바스락 거리던 그 무렵의 내가 생각난다. 불안을 내리 누르려 애쓰던 나날들. 무엇이 될 지 몰라 막막했던 밤들. 우습게도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를 꼽으라면 저 시기가 떠오른다. 얼마나 배가 불렀던가. 용돈을 받아 쓰면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TV까지 보다니. 좀 더 즐거워했어도 됐을 텐데. 미래를 걱정하느라 당시를 전혀 즐기지 못한 그때의 내가 안타깝다. 얼마나 혁혁한 업적을 쌓으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댔을까.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성격. 그게 늘 문제였다. 서둘러도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내일은 왔고, 새로운 내일에는 늘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터져 나오곤 했었다. 미리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의 나는 오늘을 살면 되는 건데, 그걸 깨닫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아니, 지금도 완전히 깨달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단지 노력하고 있을 뿐. 오늘만 살자, 오늘만 살자 매일 다짐하는 요즘이다.

미래의 나는 어쩌면, 오늘의 나를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바스락 거리던 그때를 추억하듯, 오늘을 추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은 내 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고, 여전히 휴직 중이며, 학원에 다녀온 아이도 나를 찾는다. 내일은 또 하루 더 늙을 테고, 곧 복직을 할테고, 아이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날도 오게 되겠지. 무엇을 그리 걱정하나. 오늘의 내가 오늘을 살아 넘기면, 내일의 내가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청춘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하루가 흘러간다. 나의 오늘 목표는, 이 소중한 하루를 평안히 마무리 짓는 것.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즐겁다. 이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 하면, 내일이 올 것이고, 내일 또 하루를 평온하게 보내면 된다.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하루살이처럼 하루에만 충실하면서. 이 상황에 굳이 바람을 보태자면, 모든 이들의 오늘이 평안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어쨌든, 나도, 청춘도, 당신도, 우리도, 모두.